토종 PC업체, 우물안 개구리 전락

싱가포르 도심에 위치한 스위스 스템포드타운. 호텔·쇼핑몰·레스토랑이 모두 밀집해 있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복합 센터다. 센터 전면에 글로벌 삼성을 홍보하는 큼지막한 전광판이 인상적이다. 이곳 4층에 있는 전자 쇼핑몰에는 가전에서 모니터·컴퓨터는 물론이고 휴대폰까지 각 나라의 제품이 즐비하게 깔려 있다. 자국 브랜드가 전혀 없는 싱가포르는 모두 해외 브랜드다. 국내 대표 브랜드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디지털TV 등 가전과 디스플레이는 이곳에서도 인기 상품이다.

 하지만 노트북PC 코너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브랜드를 찾아 볼 수 없다. 전세계 20여개 브랜드 제품이 있지만 국내 제품은 전시조차 돼 있지 않다. 현지 직원은 아예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노트북PC를 만드는지도 모르는 눈치다.

 국내 PC 업체가 ‘사활을 걸고’ 수출에 시동을 걸고 있지만 아직도 해외에서 브랜드 인지도는 ‘걸음마 수준’이다. 2∼3년 전 자체 브랜드를 통한 수출에 적극 나섰지만 해외에서 PC 사업만은 자존심을 구기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한 주문자상표부착과 설계 생산(OEM·ODM) 방식 사업도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브랜드를 올리기 위한 공격적인 글로벌 전략과 디지털 가전 등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제품과 시너지를 통한 마케팅 없이 토종 PC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ODM 수출 ‘고전’=삼성전자는 내년이면 미국 델과 노트북PC ODM 계약이 끝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델의 ODM 계약은 내년 하반기에 끝나며 델은 후속 모델을 대만 콴타컴퓨터에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지난 2001년 델과 4년 동안 5억달러 규모의 노트북PC 공급 계약을 해 2002년부터 노트북PC를 공급해 왔다.

 이미 삼보컴퓨터와 HP와의 공급 계약이 끝났다. LG전자도 IBM과의 8년 동안 노트북PC 계약이 지난해로 마무리됐으며 올해부터는 HP에서도 추가 주문을 받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도 이전과 달리 ODM 사업에 미련을 두고 있지 않다. LG전자 측은 “대만과 중국 업체의 저가 공략으로 더는 ODM 사업에서 수익을 찾기가 힘들다”며 “대신에 자체 브랜드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 수출 아직 ‘걸음마’=브랜드 수출은 녹록지 않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 초 노트북PC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 각각 100만대, 50만대 정도를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체 브랜드 수출 성과는 삼성은 대략 30만대, LG는 10만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증가한 수치지만 원래 목표치에는 크게 미달하는 성적이다. 러시아 등 신흥 국가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일본 등 시장 규모가 큰 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 등 상대적으로 PC 시장 성장률이 높은 지역에서도 아직까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IDC가 발표한 자료는 국내 PC 업체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IDC가 조사한 ‘아태 지역 PC 시장 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삼성만이 유일하게 10위권에 랭크돼 있다.

 하지만 성장률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지난해 1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연평균 성장률 면에서는 삼성은 ‘-13.3%’로 10위권 업체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HP·IBM·에이서·아수스 등 모든 브랜드가 성장했지만 삼성은 마이너스 성장했다. 한마디로 국내 PC 시장에서 판매 비중 때문에 10위권에 진입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맥을 못추고 있다는 방증이다.

 ◇탈출구는 없나=수출이 다소 부진한 데 대해 주요 업체는 자체 브랜드로 무게 중심을 옮긴 지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은 점을 든다.

 그동안 해외 인력 확충 등 현지 시장 인프라 구축에 치중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내년에는 수출도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실제 우크라이나 등 일부 국가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기술·성능 면에서 글로벌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자위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올해 국내 업체가 수출 목표치를 달성해도, 2억5000만대 규모로 예상되는 세계 PC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토종 브랜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50%를 육박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초라한 성적표다. PC 업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글로벌 마케팅 체제와 상품 전략이 필요하다는 중론이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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