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정년없는 사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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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얼마 전 서울디지털단지 내 한 유망 벤처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들은 다소 뜻밖의 회사 성공비결이다. 숙련된 기술, 오랜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성실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직원들도 나이든 선배들을 교훈삼아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고 회사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는 게 이 회사 사장의 설명이다.

 이와 달리 수도권 산업단지의 많은 중소기업 경영인과 대화를 나눠보면 최대 애로사항이 극심한 인력난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의 성장은 고사하고 기존의 생산활동마저 차질을 빚을 정도라며 그 심각성을 토로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정도로 지금 산업현장에는 여유가 없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인 실업문제. 이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때가 아닐까. 지금 산업현장은 한 달에도 수십 번 이력서를 내며 이 직장 저 직장을 찾아 헤매는 ‘캥거루족’과 같은 젊은이들을 기다리기에는 매우 절박한 실정이다. 대학을 나온 꿈많은 젊은이들을 곧바로 좌절케 하는 청년실업 대란의 시대. 다른 한편 산업의 현장에선 쓸 만한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는 이른바 ‘미스매치(mismatch)’를 더는 방관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빠르게 진입하는 노령화 사회에 따른 중장년층 실업이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95년 24%던 노령화 지수(14세 이하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율)는 2000년 34%에서 2010년 62%, 2020년 109%에 이를 전망이다. 이 결과 2010년경 50세 이상 인구비율이 34%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중고령 인구로 구성되는 게 불과 5년 뒤 현실이다. 청년실업 못지않게 중장년층 실업문제도 심각해지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 것이다.

 여태까지 겪어보지 못한 이 같은 사회경제 패러다임의 급속한 변화는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과 같은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국사회이기에 선진국보다 더욱 각별한 중장년 실업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고용없는 성장’ 속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경제구조로 전환하려면 전세대에 걸친 실업문제의 해결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우리 사회의 중추를 이뤘던 60년도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사오정, 오륙도’란 표현대로 어느새 직장에서 대량 퇴직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평균 퇴직연령이 53세라는 최근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창 가정 경제력을 뒷받침할 가장들이 직장에선 무능하고, 가정에선 힘없는 ‘퇴물’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경제발전의 신화를 일으킨 값진 경륜과 노하우가 너무 빨리 사장되는 국가 사회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산업현장의 절박한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돌파구를 찾을 때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학력=출세’라는 등식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급속히 다가오는 고령화시대에 대비한 직장 개념의 재정립과 대응이 절실하다. 퇴직이 없는 ‘평생직장’이란 무엇인가. ‘모든 세대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가 무엇인지 사회 각계 각층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정년 없는 사회 만들기’에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찾아야 한다.

 <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cdkim@e-clus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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