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초사’.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류필구 사장(61)이 뜻밖의 단어를 꺼냈다. 상당히 감성적인 언어다. 카리스마형 CEO로 평가받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현장주의, 영업 일등주의 등등의 말들은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노심초사의 리더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고 반문한 그는 문득 시 한수를 풀었다. 소회와 적당한 설명을 곁들여 자기 이야기를 했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라고 읊었잖아요. 생각해보면 내일 적과 맞서려면 잠도 충분히 자고 해야 할 텐데 잠을 못이루는 그 마음 말이지요.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책임지기 위해 염려하는 그 마음. 즉,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류 사장이 효성그룹 계열사인 동양나일론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햇수로 30여년이 넘었다. 15년 만에 동기들은 모두 회사를 떠났지만, 회사를 지켰고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효성나스)의 창립멤버(관리부장)로 합류했다. 26일이 20년을 맞는 날이다. IT업계 최장수 CEO 그룹에서도 빠지지 않는 그다. 류 사장은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20년 재직 중에서 10년을 CEO로서 몸담아왔다.
그 비결을 물었다. “설, 추석 때는 제가 도맡아서 당직을 섰습니다. 그게 마음도 편해요”, “당시에 나만 그랬나요, 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난 평범하게 직장생활 했어요 ”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다만, 그는 “회사 일이지만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내일 프로젝트는 잘 될 수 있을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라는 말로 초년병부터 현재까지 지난 세월을 대변했다.
류 사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노인같다”고 평가한다. 너무 쉽게 달관한단다. 젊은 데 건강에도 지나치게 신경쓴다고 했다. “영업에서 지면 분하게 생각하는 ‘분개’하는 마음이 일어야 하는 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를 너무 잘 위로한다”는 것이다. “위로의 이야기는 상사인 내가 해야 하는데 스스로 다 해서 멋쩍은 적도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식구인 효성인포메이션 직원들은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류 사장은 ‘강팀’이라고 표현했다. “남들은 우리 직원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나타나니까 규모가 꽤 큰 줄 알아요. 150명 남짓이라고 하면 놀랍니다.” 최고의 칭찬이자 자랑이다.
경쟁업체에서 온 경력 사원은 물론이고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HDS에서도 한결같이 받는 평가다. 덕분에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은 지난 20년동안 IBM 메인프레임 독주 시절, 호환기종으로 2강 체제를 만들기도 했고 HDS의 세계 10대 파트너사로 오르는가 하면, 14년 연속 이익을 내는 탄탄한 회사로 자랐다.
“효성인포메이션 20주년의 의미는 남다릅니다. 성년이 됐다는 이야기이고 책임이 커졌습니다. 이제 성숙한 사회 일원으로서 임직원, 주주, 협력사, IT산업, 사회 각계 기대에 부응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올초부터 그는 효성인포메이션 뿐만 아니라, 그룹 계열사인 노틸러스효성 CEO(공동 대표)까지 맡았다. 삼팔선, 사오정 등등 흉흉한 말들이 오가는 시대에 그는 60대에 새로운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사실 그 때 이후로 류 사장은 이유없이 3kg이 빠지고 건강체질인데도 위가 헐었다. 분명히 노틸러스효성에서도 노심초사한 덕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틸러스효성이 최근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큰 폭의 순익을 기록한 것이 그것을 반증해준다.
그는 “글쎄요, 빠진 살이 다시 안찌는 것을 보니 스트레스를 받긴 받았나 봅니다”라며 미소만 살짝 띄웠다. 그 모습이 참 여유로와 보였다. 주위의 평가가 그렇듯 그 열성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순간이다. 일에는 노심초사하지만, 노련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그는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이나 노틸러스 효성 모두 각 분야(스토리지와 금융)에서 선두에 있지만, 이익 내는 ‘그냥 좋은 기업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룹사 차원에서도 정보통신 계열사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두 회사는 회사 비전을 새롭게 짜고 있다.
“서로 좋고 편한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안주하게 되니까요.” 60대의 노익장이 젊은 세대에게 던진 충고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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