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2년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인 서울 구로공단을 당시 영애(令愛)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방문했다. 주로 섬유 공장 일색이던 구로공단에서 전자공학과 2학년이던 박 대표의 눈에 들어온 전자부품 업체가 있었다.
박근혜 대표는 일정에도 없는 이 업체를 직접 방문,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국내 전자부품 산업의 현주소를 들었다. 그 업체는 72년 설립 후 34년 동안 국내 전자부품 산업과 함께 한 ‘로옴코리아’다.
로옴코리아는 일본 로옴과 매우 닮았다. 기술과 품질 제일주의에서 시작해 무차입 경영과 환경 경영 등 교토식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로옴코리아는 일본 기업의 해외사업장 중 하나라기 보다는 이미 국내 부품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장이다.
◇로옴 해외 사업장 중 최고 수준=일본 로옴은 교토식 경영의 핵심인 기술과 품질 제일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 로옴코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로옴코리아는 로옴 해외 사업장 중 유일한 모(母) 공장이다. 일본 내 생산 시설을 포함해도 전체 3곳에 불과하다. 모 공장은 일본에서 개발한 최첨단 제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고 다른 해외 사업장의 관리와 기술 지도가 가능하다.
주력제품은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집적회로, LED 등 일본 로옴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망라한다. 특히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는 국내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로옴코리아는 단순히 로옴 본사에서 개발한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수준을 넘어 LED 등 첨단 제품의 설계까지 맡고 있다. 특히 생산설비를 직접 제작, 기술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로옴코리아 생산본부장을 맡고 있는 심우출 이사는 “현재 운영 중인 생산설비의 99%는 자체로 만든 것”이라며 “설비를 자체 제작하면 다품종 소량생산에 빨리 대응할 수 있고 생산비용도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로옴코리아의 기술 및 품질은 각종 인증으로 증명된다. 로옴코리아는 지난 94년 ISO9002를 시작으로 97년 QS9000과 ISO14001, 올해 TS16949 등의 인증을 차례로 받았다.
◇환경경영은 한국에서도 이어진다=로옴코리아의 서울과 대전 사업장에 가본 사람은 넓은 녹지에 놀란다. 보통 사업장 앞 화단에 형식적으로 꽃을 심거나 군데군데 나무를 배치해놓는 것이 상례인데 로옴코리아는 대전 사업장은 물론 땅값이 만만치 않은 서울 사업장의 부지 절반을 녹지에 할애했다.
심재형 로옴코리아 사장은 “본사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규모 조림사업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사업장은 가능한 한 녹지를 많이 조성하고 있다”며 “환경경영은 로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말했다.
로옴코리아는 언제나 직원들에게 개선 사항을 받고 있다. 형식적인 제안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업무에서 느낀 불합리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 노력이다. 이대진 관리본부 이사는 “월 1000건 정도의 제안이 들어오는데 이는 직원 1인당 1건 수준”이라며 “이 가운데 20건 가량은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제안이라는 제도가 그냥 방치하면 1달에 몇 건 들어오기 어렵지만 로옴은 이미 전체 임직원에게 경영 효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자리잡았다.
◇영업은 변화의 흐름을 읽는다=로옴코리아는 지난 96년 판매법인을 로옴전자코리아로 분리했다. 갈수록 빨라지는 부품 산업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개발과 생산은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지만 영업과 마케팅은 변화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하려는 포석이다.
로옴전자코리아의 움직임은 신속하다. 제조업체인 고객사로부터 시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파악, 적합한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고 있다. 김중언 로옴전자코리아 사장은 “대표적인 것이 친환경 제품이며 이미 지난해부터 100% 무납제품을 공급해 고객들의 수출 전략에 대응했다”고 말했다.로옴전자코리아는 또 고객 지원을 위해 국내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주로 휴대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조직은 크게 영업부문, 전력영업부문, 관리부문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140여 명의 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로옴전자코리아는 국내에서만 3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으며 오는 2008년에는 1조원 매출을 목표로 삼았다.
◆인터뷰-심재형 로옴코리아 사장
‘고객의 신뢰는 품질에서 나온다’
심재형 로옴코리아 사장(57·사진)은 품질 지상론자다. 지난 77년 로옴코리아 입사 후 30년 가까이 전자부품의 한길을 걸으며 ‘품질’만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옴코리아는 지난 88년 당시 국내에서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TPM(Total Productive Maintenance) 활동을 시작했다.
심 사장은 “당시는 국내에 TPM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JIPM에게 적지 않은 비용을 줘야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돌아왔다”며 설비의 최적화를 통해 품질 혁신을 꾀하는 TPM 활동을 92년까지 벌이며 로옴코리아는 본격적인 품질 경영의 기틀을 닦았다고 설명했다.
로옴코리아는 TPM에 이어 93년부터 96년까지는 ‘도약 96’ 운동, 97년부터 2000년까지는 ‘베스트 21’ 운동, 2001년부터는 ‘베스트오브베스트’ 운동 등 4-5년 주기로 혁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로옴코리아는 무역수지 개선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만일 로옴코리아가 없었다면 일본이나 미국 업체에게 수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로옴코리아는 작년 매출 약 2400억원 중 절반 이상을 일본 본사에 수출, 일본 기업의 자회사지만 오히려 대일무역역조를 개선하고 있다.
심재형 사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로옴의 일원일뿐 아니라 국내 전자부품 산업에 미약하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직원 모두에게 강조하고 있다”며 향후 불량률 0%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사진: 로옴코리아는 부지의 절반 정도를 녹지로 조성, 환경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은 로옴코리아 대전사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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