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난제를 진단하는 외국인의 처방은 한결같다.
외국계 한 증권 전문가는 “한국의 강성 노동운동만 없다면 한국경제는 낙관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전문가는 “한국의 청년실업은 산업과 동떨어진 교육의 문제이며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나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국 국제정세 전문가는 “통일이 전제된다면 한국은 정치, 경제, 국제적으로 동북아 열강의 한 축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특정한 상황을 전제로 한 추론은 모두 그럴싸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러한 추론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먼저, 전제조건을 해결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발전하려면 노동운동이 여성화돼야 한다. 청년실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열강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이 돼야하는 조건이 있다. 결과를 이루기 위해 조건을 해결하는데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조건 해결이 곧 전부이다. 그러나 조건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중남미의 경제정책 실패, 아프리카의 절대빈곤 해결책을 운운하는 것과 같다.
답은 언제나 전제조건에 있다. 조건이 해결된 다음의 일은 전체 일의 20%도 채 안 된다. 명쾌하지 않은 병에 대한 통상적인 의사의 처방과 같다. 술, 담배 끊고, 제때 식사하고 약 먹고, 정기적으로 운동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런 대안도 될 수 없는 말이다.
출구가 안 보이는 불황에 묘답을 내놓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저 ‘조건부 희망론’만 거듭할 뿐이다. 미래 먹을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문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라는 ‘조건’은 아무리 따져도 근거가 미약하다. 온라인 때문에 사업을 위협받는다고 대세를 거슬러 인터넷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다. 정부의 지원이 없다고 해서 불평하는 사업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낳을지 모른다.
산업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주체는 기업인이다. 기업인 스스로 변화에 대처하고 시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조건부 희망론’을 펼칠 바엔 차라리 봄을 기다리는 호기론(好機論)이 희망적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그때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필요한 때다. ‘겨울에 몸을 움츠리면 봄맞이에 소홀하게 된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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