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다국적 업체들 채널정비 본격화
컴퓨팅 유통 시장의 새판 짜기가 시작됐다.
주요 다국적 컴퓨팅 기업들이 유통 채널 정비에 나서면서 특정 벤더와 연결된 유통사의 관계가 새롭게 그려지는 지형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솔루션을 기반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유통사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 주목된다.
이런 변화는 국내 IT 시장이 일정 정도 포화되면서 다국적 컴퓨팅 업체를 비롯한 서버 공급업체들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파트너들을 집중 지원하는 전략과 맞물려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IBM 사태, 유통 시장 새판짜기로 이어진다=한국HP·컴팩코리아 합병 이후 몸살을 앓은 국내 유통 시장은 한국IBM 사태로 인해 다시 한번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특히 한국IBM이 지난달부터 유통 채널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을 가함에 따라 후 폭풍이 전체 컴퓨팅 유통 업계에 미치고 있다. IBM 진영은 간접 판매 비중을 높인다는 전략을 세우고 기존 비즈니스 파트너(BP)사 중심의 채널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한국IBM이나 LGIBM으로부터 채널 자격을 박탈당한 업체들은 다른 벤더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 기회에 소프트웨어 유통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한국EMC는 지난해 말 10개의 총판을 중심으로 한 체제로 바꾸었고 올해부터 서버 유통을 본격 펼치려는 삼성전자, 인텔코리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등 주요 업체들도 채널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
◇더 이상 ‘로얄 파트너’는 없다=오랫동안 제품별 전문 채널 정책을 펼쳐온 한국EMC는 지난해 말 10개 총판을 중심으로 한 구조로 유통 정책의 근간을 바꾸었다. 한국EMC의 이같은 선택은 무엇보다 엔빅스(구 대인정보시스템)처럼 EMC 영업을 전담해온 유통 업체들의 사업 구조를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엔빅스는 그야말로 ‘EMC의 로열 파트너’로 꼽혔지만 이제는 10개의 총판 중 하나로 바뀌었다. 엔빅스는 서버 및 다른 솔루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등 종합 유통사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오랫동안 인텔코리아의 대리점 관계를 맺고 IA 서버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온 삼테크도 최근 삼성전자의 서버 총판 계약을 체결, 양사의 비즈니스를 함께 벌이고 있다. 한국HP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IP샌네트워크는 최근 LGBIM과 총판 계약을 체결하며 배를 갈아탔다.
히타치 스토리지의 대표격인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도 종합 스토리지 솔루션 업체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효성인포메이션, 엔빅스, 삼테크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통 업체가 특정 밴더에 충성도를 보이는 것이 미덕이 시대는 지났다”며 “공급사 입장에서 유통사들이 심지어는 경쟁사 제품까지 취급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달가울 리 없지만 공급사들의 전략 변화가 원인을 제공한 이상 뭐라 할 수 없는 처지다”라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가치 창출 능력을 갖춘 업체가 대우받는다=한국IBM이 새로운 유통 채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LG엔시스는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유통사인 이 회사가 한국IBM의 총판으로 선정됨으로써 코오롱정보통신·SK네트워크·하이트론·영우 등 대형 서버 유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LG엔시스는 흔히 대형 유통사가 갖추고 있는 자본력이나 그룹 물량을 갖고 있는 공통점 외에도 시·군·구 공공시장에 대한 영향력과 솔루션 기반의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LG엔시스는 새로운 유통 비즈니스 유형을 창출할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유통사의 한 관계자는 “LG엔시스가 서버 유통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국내 컴퓨팅 유통 시장의 질적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변화는 대형 유통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채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보안 전문 업체인 윈스테크넷은 자사 보안 솔루션을 후지쯔 서버에 탑재해 공급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한국후지쯔의 파트너로서 대우받고 있다. 최근 한국IBM의 파트너사로 주목받고 있는 CIES나 모아시스도 각각 캐드·캠과 HPC(고성능컴퓨팅) 분야의 노하우를 갖고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매출 규모에 관계 없이 특정 수요처나 솔루션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들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