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경기는 회복되고 있는데, 우리는 계속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보통신(IT) 기업인으로서 더 걱정스러운 것은 글로벌 IT 산업의 질서가 무섭게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IT 산업의 주요 움직임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고객과의 접점에 대한 대형 업체들의 장악력이 높아지고 있다. IBM을 필두로 거대 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변신을 시도한 결과, 이제는 각종 제품과 서비스, 컨설팅, 시스템 통합 기술을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고객들은 전문적인 IT 분야를 과감하게 아웃소싱하고 본연의 핵심 비즈니스에 주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보편성을 띠고 있다.
둘째, 제품간 통합적 운용과 서비스 편의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인터넷 기반의 커다란 혁명의 틀이 이제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 e비즈니스 기업용 솔루션은 상호 연동성과 표준화가 필수 요건이 됐다. 이는 신규 업체에게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회는 계속 창출되고 있지만, 신속하게 시장에서 자리잡아야 하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셋째,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업무 교류가 확대되고 있다. IT 산업에 관한 한 각 국가는 자신들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다. 미국은 최대 소비와 공급 시장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다. 유럽과 일본은 성숙한 유통 서비스 체계를 바탕으로 대규모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막대한 인적 자원을 IT 분야에 유입하고 있으며, 인도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SI 분야에서 자원 공급의 역할을 담당한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주도권의 움직임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보안 시장의 주축은 이스라엘 기업에서 중국계 미국 기업으로 움직이고 있다. 초기에는 핵심 기술을 소프트웨어 기능으로 성숙화하는 게 중요했지만, 이제는 성능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하드웨어 제품으로 개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용 솔루션을 개발하는 한국의 벤처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세계적으로 IT 산업에서 기업용 솔루션의 영향력이 가장 크지만 국내 기업들은 한층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은 규모가 작고 유통 서비스 체제가 낙후돼 있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노력을 지불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세계 IT 산업 진입의 높은 장벽은 해외 진출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IT 본래의 취지는 기업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이 시장이 정체성을 가지고 건전하게 발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제, 이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과감한 변신을 해야 한다. 정체된 사업 모델은 역동적인 IT 산업에서 적합하지 않다.
우선 국내 시장의 현실로 작은 규모, 대기업의 영향력, 후발주자의 저가 경쟁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워 기업을 안정화하고 전문화해야 한다. 동종업체간 결합이 주로 얘기되지만 인근 솔루션과 통합적 사업 모델을 제공하는 전략도 바람직하다. 시대적 추세가 통합 솔루션 제공과 전반적인 아웃소싱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기회도 엿보아야 한다. 비록 선진 업체들의 진입 장벽은 존재하지만 패러다임 변화에 맞춘 기술과 제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틈새 시장이라 해도 국내 시장보다 크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노력할 가치가 있다. 더구나 우리는 뛰어난 기술을 검증하는 데 더 없이 좋은 IT 환경을 지니고 있다. 제품의 경쟁력을 갖추고 검증됐다면 남은 몫은 시장의 흐름에 접목하기 위한 경영자의 의지다.
변신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제휴와 인수합병(M&A)에 있어서 과감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그러한 기업의 변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올해에는 논의가 아닌 실행이 이뤄지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홍선 시큐어소프트 사장 hskim@secur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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