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국가표준 인식 넓혀야

 산업과 과학기술분야에서 ‘표준’이라 하면 일반 사람들은 흔히 한국산업규격(KS)이나 국제표준화기구(ISO)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아마 KS나 ISO 표준처럼 ‘규격’이라 일컫는 성문화된 표준이 여러 산업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고, 또한 각종 매체에서도 많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격과 같은 성문표준은 표준제도에 있어서 한 부분이며, 최근의 첨단기술 산업분야에서는 측정표준의 확립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성문표준이 성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즉, 제품 생산과 관계되는 기술적 내용을 규정한 규격의 확실한 적용을 위해서는 미터(m)나 킬로그램(kg)과 같은 측정 단위의 정확한 제공과 제품 성능의 검증을 위한 측정시스템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쉬운 예를 들면, 직경 2밀리미터(mm)의 너트를 규격에 따라 제조할 경우, 허용 가능한 수준의 오차를 넘지 않는 제조장비의 성능과 생산된 너트의 직경 검증을 위한 측정장치 없이는 해당 규격에 적합하게 생산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이 같이 측정표준이 성문표준의 기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경공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주를 이루었던 60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큰 필요성이 없었다. 와이셔츠나 운동화 정도를 만드는 산업구조에서는 1mm 정도 치수가 틀리게 생산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고도공업화를 지향하는 중공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수출이 50억달러를 넘어서게 되면서 수출품의 품질보증을 위한 국가측정표준의 확립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나타나게 된다.

 지난 1999년 10월 세계 각국의 국가측정표준 대표기관들은 국가간 문물의 원활한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WTO체제 하에서 무역의 기술적 장벽(TBT) 제거를 위한 범세계적 노력의 일환으로 ‘국가측정표준 상호인정협약’(Global MRA)을 국제도량형위원회 주관으로 체결했다.

 올해 모든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53개국이 서명한 이 협약은 각 기관에서 유지하는 국가측정표준과 그에 따른 생산물이라 할 수 있는 측정 및 교정성적서를 상호 인정하여 각 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호환성과 품질을 보증하는 것이 핵심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측정표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내 산업체가 해외로 물건을 수출하거나 해외로부터 공사를 수주한 경우 예전에는 제품과 관련된 측정기기의 측정 및 교정 성적서는 반드시 해당 국가 측정표준 대표기관 또는 대표기관과 소급성이 확보된 기관에서 발행된 것만이 인정됐다. 그러나 상호협약의 체결에 따라 국내에서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발행한 성적서만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러 경우를 포함하여 국제적으로 저명한 경영자문기관인 KPMG 컨설팅에서 상호협약의 잠재적 경제 파급효과를 분석한 보고서에 의하면 서명국 각각 양자간 협약을 체결하는 것에 비해 상호인정협약이 시행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매년 약 1156억원(8500만 유로)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일반인에게도 측정 표준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인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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