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제48회 재일한국인과학기술협회의 학술보고회가 열렸다. 올해는 한국에서 6명의 대표가 참가해 활기있는 토론이 진행됐다. 당초 북한에서도 대표가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일본과의 국제관계가 악화됐다는 이유 등으로 불참했다.
2년전 당시 IMRI의 유완영 회장이 한국에서 혼자 참가해 150명 정도의 재일한국인과학기술협회회원 앞에서 “조국 통일을 위한 남북교류 협력에 과학기술적 측면의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작년에는 남과 북에서 각각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해 구체적인 남북교류 협력에 관해 토론한 바 있다. 남북 대표들은 재일 과학자들과 함께 도쿄 신주쿠에서 1주일을 보내며 60년 가까운 남북분단의 벽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격의없이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는 북측에서 다섯 명의 대표가 일행으로 와서 대회에 참가했으며, 남측 대표들과 기탄없이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것은 북측에서 남북교류 사업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보여준 사례였다.
필자는 88년부터 2002년까지 거의 해마다 평양을 방문해왔으며 그 기간에 북측의 IT사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일본과 북측은 전화로 항상 연락할 수 있고 팩스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e메일은커녕 국제전화를 이용한 모뎀통신을 하려다가 북측에서 허가를 받지 못해 실패한 적이 있으며, 총련과협의 학술보고회가 42회째 열리는 데도 북측에서 대표가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지난해 북측의 참가는 대단했다.
북측의 이런 변화는 6·15 이후 남북교류에 대한 지향성과 정보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측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IT를 중시했으며, 특히 2000년도에 들어 정보화의 방침을 명백히 하고 정보산업 발전을 국가 중심과제의 하나로 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교류·경협의 여러 분야 중에서 IT분야가 더 빨리 추진되는 것이다.
필자는 남북 양 조국의 화해 협력과 장래의 과학기술, 산업발전을 위해 북녘땅에 있는 신뢰할 수 있는 IT전문가들과 남녘땅에 있는 훌륭한 IT전문가들이 교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직접 교류하게 되면 협력사업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착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2년전의 극적인 만남, 지난해의 흥분 등은 없었지만 재일과학자와 한국대표들 간의 남북통일을 위한 3자 교류 협력사업에 대해 밀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필자는 이전부터 IT분야에서 남북통일의 3자협력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재일(在日)’ 이라는 돌다리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이러한 생각은 더욱 현실성을 더해주고 있으며 협회 회원 대부분도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욱이 3자협력 사업이 협회 보고회를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의 협회 보고회에서는 향후 3자협력 사업의 지향점에 대해 공통의 목적을 위한 구체적인 공동작업이 검토됐다. ‘IT용어 표준화 프로젝트’가 그것인데 구체적인 공동작업을 통해 전문가들의 교류협력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아직은 기획단계지만 새로운 남북통일을 위한 3자 협력사업 모델의 창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갔다.
일본 속담에 ‘石の上にも三年(이시노 우에니모 산넨)’이란 말이 있다. 차가운 돌 위에서도 3년을 견디면 따뜻하게 된다는 의미로 우리 뜻으로는 참고 견디면 복이 온다는 격언과 같다.
현재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도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불과 나 혼자만은 아니다.
◆리상춘 재일조선인과학기술협회 콤퓨터전문위원회 위원장 lee@kyoto.email.ne.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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