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박대용 CJ GLS 사장(2)

이런 사례들이 소문과 당사의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업계에 퍼져 99년 말 50여개의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는 제대로 된 3자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는 당사 이외에 몇이 안되었고 우리는 CJ(주)(구 제일제당)의 이미지와 시너지효과를 통해 수주 성공률이 50%를 넘었다.

 설립 당시의 두 번의 결정이 모두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 이듬해에 택배사업과 포워딩사업을 시작해 독립 원년 매출액은 637억원, 지난해 매출은 2800억원으로 5년간 거의 5배 성장을 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올해는 38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어갔던 것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물류대행업을 하기 위해서는 화물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쉽지 않아 아예 물류 회사를 세울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는 화물운송사업이 허가제로 돼 있어 허가의 기준이 아주 까다로웠다. 우리는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았다.

 아마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지 않았다면 CJ GLS는 탄생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옛말이 맞는지 97년 8월 물류사업 규제 완화 차원에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일정 요건이 갖추어지면 허가를 내주는 등록제로 바뀐 덕에 순조롭게 98년 3월 법인을 만들 수 있었다.

 인력문제도 돌발적으로 발생한 문제였다. 회사 설립 당시 창고·배송의 운영 전문인력은 많았으나 영업과 컨설팅쪽의 인력은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CJ의 물류 운영만을 하다 보니 물류 영업인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 모르나 고객사를 유치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영업과 컨설팅 인력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따라서 외부에서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로써 98년 3월 운영과 영업·스태프 등 273명의 본사 인력과 482명의 파트너사 인력이 함께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CJ GLS가 설립된 것이다.

 98년 3월 2일 회사 창립식이 있던 날 처음 물류 부서로 발령을 받아 물류인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의 일들이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한편으로는 내가 대표로 있는 회사를 앞으로 어떻게 키우고 임직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가가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