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 할 일이 없네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일산의 하나로통신 본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귀가 채비를 갖추며 이렇게 말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데다 최고경영자(CEO)도 없어 동요하는 이 회사 임직원들의 모습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두루넷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온세통신의 임직원들은 더하다. 활력은 찾아볼 수 없고 “언제나 주인을 찾게 될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초고속인터넷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될까. 구조조정이 업계자율에 맡겨진 상황에서 이같은 질문에 누구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동종업계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메이저 사업자들이 후발사업자를 인수함으로써 망 인프라를 효율적인 운영하고 지속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인수 대상인 후발사업자들에게서 더욱 강하다. 두루넷과 온세통신의 관계자들은 “KT가 됐든 데이콤이 됐든 빨리 우리를 인수했으면 좋겠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대형 통신사업자들은 시너지 효과와 향후 사업방향 등에서 후발 초고속인터넷사업자를 인수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데이콤은 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한 하나로통신에 이어 두루넷이나 온세통신을 인수하면 KT에 맞먹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KT는 절대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멀티미디어 서비스 등 신규 사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고 케이블망 확보라는 더 큰 덤을 얻을 수 있다. SK텔레콤은 취약한 유선사업에 발을 걸칠 수 있다.
문제는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데이콤은 파워콤의 인수로 인해 자금이 부족한 데다 LG의 자금지원도 없어 인수자금이 턱없이 모자란다.
KT는 자금여력은 있으나 점유율 상승으로 인한 규제를 걱정한다. SK텔레콤의 경우 하나로통신에 내심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유선사업에 손대지 않겠다던 약속에다 LG에 비해 낮은 지분, SKT 경영권 논란 등이 겹쳐 검토조차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형 통신회사들은 저마다 인수에 머뭇거리고 있다. 덩달아 후발사업자의 기업가치는 떨어지고 부실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M&A 환경이 무르익어도 정작 M&A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빚을 수 있다.
시장경쟁 논리로 보면 사업자의 퇴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기간망이 된 초고속인터넷에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초고속망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가 업계 구조조정에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사업자들의 방만한 투자를 미래 통신환경 구축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기관들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정부가 특정 업체를 어느 사업자가 인수하도록 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M&A 환경을 조성해주기를 기대했다.
이를테면 현실적으로 인수능력이 있는 KT에 대해선 최대 걸림돌인 독점 논란에 대해 정책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 구조조정과 국가 기간망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번 인수만큼은 정책적으로 승인하되 향후 발생할 독점 우려에 대해 예방조치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이같은 방안은 KT를 M&A에 적극 나서도록 하고 이를 통해 LG와 SK텔레콤도 자극해 M&A경쟁을 촉진시킴으로써 구조조정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현실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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