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의 본적은 미국이지만 머지않아 그의 주소를 한국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난 45년간 발명왕 에디슨의 발명품들을 수집해 5월부터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에디슨 네버랜드’ 전시회를 여는 손성목 참소리 박물관장(59)은 전세계 에디슨 수집가들이 인정하는 소장가다.
“소리를 찾아 축음기의 매력에 깊게 빠졌다가 자연스럽게 축음기를 맨처음 만든 발명가 에디슨의 축음기를 접하게 됐고 그의 발명품을 수집하게 됐습니다.”
소리에 이끌려 에디슨을 알게 되고 그의 성실한 외길 인생에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는 손 관장.
그는 에디슨처럼 일생을 바쳐 한 가지 일에 매진하며 그의 발명품을 모으고 보존해 후세에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에디슨은 아직 발명할 것이 많이 남아 300년을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도 300년을 살아야 할 만큼 아직 수집할 것이 많습니다.”
그의 직업은 ‘수집가’다. 손 관장은 여섯 살이던 1948년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콜롬비아 G241’ 축음기를 6·25 사변에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내면서 수집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에디슨은 알을 품던 호기심 많은 소년에서 최초의 벤처기업가로 성공했습니다.”
손 관장은 에디슨은 단순히 발명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다양한 발명품을 사업화한 최초의 벤처사업가였다고 말했다.
“에디슨은 두 개의 책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발명을 위한 책상이었으며 또 하나는 발명 공장의 운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디슨이 회사 운영가로서 통솔력과 비즈니스 감각이 탁월했다고 강조했다.
에디슨은 수많은 발명의 업적뿐 아니라 자신의 발명 결과를 사회적 재산으로 환원해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수집을 하러 60개국을 돌아다니며 강도를 당하기도 했고 총상을 입은 적도 있었습니다. 수집을 하다가 사업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파산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에디슨 유물을 수집하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제가 수집한 물건들은 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자원입니다.”
손 관장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 에디슨의 발명품 전시회가 학생들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과학을 조금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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