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오디오 마니아` 2인

 “오디오는 말이죠. 어른들의 장난감 중에서는 최고의 영역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난감을 만지려는 본능이 있다. 특히 손재주가 있고 호기심 많은 소년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엇인가 기계적인 장난감에 매달린다. 요즘 사내아이들은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하는데 열중하지만 중년층 남성도 30년 전에는 이와 유사한 그 이상의 기계적 취미가 존재했다. 고물 라디오와 전축을 붙잡고 며칠 밤을 지새우는 ‘오디오’란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정성껏 만든 광석 라디오에서 모기만한 음악소리라도 흘러나오면 소년은 마치 대단한 과학적 업적이라도 이룬 양 우쭐했다. 이처럼 오디오의 세계를 경험한 소년은 세월이 흐른 뒤 이공계로 진학하고 나름대로 첨단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중년층에게 오디오란 단순히 음악을 재생하는 도구를 넘어 어린시절 과학의 꿈을 키우던 정감어린 대상인 것이다.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의 민경윤 상무(48)는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한 지 올해로 벌써 20년이 넘었다. 학창시절부터 라디오 조립이 취미였던 그는 구 금성기전에 승강기 엔지니어로 입사하면서 오디오 바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몇 달치 월급을 고스란히 털어 외산전축을 사는 대형사고도 부지기수. 오디오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혼 이후 오히려 더욱 심화됐다. 부창부수, 성악을 전공한 대학강사 출신의 부인이 오디오 취미에 동참했던 것이다. 끝내는 용산의 여러 오디오수입상과 안면을 트고 그쪽 세계의 유통흐름까지 파악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민 상무는 97년부터 본업인 승강기 영업 이외에 외산오디오 수입딜러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입하는 외산오디오는 독일의 T+A를 비롯해 오디오넷, SME, 록산, 캐나다의 토템스피커까지 오디오 마니아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명품들이다. 사업은 부인이 담당하지만 매년 휴가를 이용해 부부동반으로 외국 오디오 전시회에 나가는 즐거움이 생겼다. 대개 시간과 돈낭비로 끝나는 오디오란 취미를 제2의 인생, 부업으로 성공시켜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보기드문 케이스다. 민 상무는 오디오 초보자들에게 자기 능력에 맞게 세트를 구매하고 요즘 추세에 맞춰 AV겸용기로 시작할 것을 충고한다.

 계측기전문업체 르크로이코리아 김현두 사장(44)의 오디오 경력도 매우 화려하다. 김 사장은 중학교 때부터 광석 라디오를 직접 만들 정도로 공학적인 소질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진공관을 만들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일본 오디오잡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당시 국내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4채널 입체 서라운드 앰프를 제작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민 사장은 대학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직접 보컬밴드까지 만들어 헤비메탈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리 비싼 오디오도 음질이 마음에 안들면 가차없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개조해 버린다. 마란츠·매킨토시 등 기라성 같은 고급 브랜드도 김 사장이 외과수술을 집도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 사장의 오디오 기행은 3년전부터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전통 하이파이에서 AV쪽으로 바뀐 것이다. 김 사장의 82평 아파트는 한쪽 벽면 전체가 AV화면이다. 그가 갖춘 홈시어터용 160인치 프로젝터와 9.1채널 서라운드 스피커는 화면의 선명도, 웅장한 사운드에서 일류극장이 부럽지 않단다.

 그에게 여태껏 들어본 오디오 중에서 최고의 제품을 물어보니 대답이 걸작이다. “중학교 때 처음 만들었던 광석라디오입니다. 스피커도 없어 이어폰을 꽂아서 듣는데 엘비스의 음성이 얼마나 좋던지.”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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