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보기술(IT)과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물류 인프라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물류하면 도로·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시설 및 선박·비행기만 떠올리던 때와는 격세지감이다.
세계 최대 물류 기업인 미국 UPS는 인터넷 기반의 물류기술 확보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새로운 물류 환경의 도래에 앞서 세계 물류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 때문이다. 미국 PC 메이커 델은 UPS의 탄탄한 물류망 덕택에 다른 PC업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갖췄다. 델은 물류를 UPS에 일임, 말레이시아에서 만든 PC를 비행기로 그날 저녁 필리핀 물류창고로 옮겼다가 일본행 밤 비행기를 바로 출발시켜 새벽전 도쿄에 도착시킨다는 것이었다. 델 본사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월마트의 사례는 더욱 획기적이다. 월마트는 위성을 이용한 정보 시스템으로 세계를 무대로 가장 저렴한 원료를 찾아내 이를 인건비가 싼 곳에서 가공, 가격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비행기만 빼고 모든 상품을 항상 저가로 파는’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로 성장한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글로벌 소싱이 가능한 월마트의 물류 시스템은 또 다른 위협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월마트가 가는 곳에 외국 제조업체도 물밀듯이 몰려든다는 점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국내시장에서 자칫하면 밀려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류에서 앞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절감한 경비를 원가에 반영해 경쟁우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개별 기업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과도한 물류비 부담은 결국 제품 원가를 높이고 사회비용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물동량에 비해 집배송 단지, 화물터미널, 도로·항만·철도 등 물류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한 통계는 교통체증으로 인한 손실이 연간 10조여원을 웃돌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심지어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대만·싱가포르에 비해서도 물류 인프라 수준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물류 인프라의 확충과 함께 기업물류 아웃소싱 촉진, 3자물류 기업 성장기반 조성, 물류설비 표준화, 물류 정보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또 지역·권역별 공동 집배송센터 조성은 물론 전자·자동차 등 핵심 업종별로 제조·물류·IT기업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공동 물류 시범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물류 전문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물류 인프라를 확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첨단 물류설비를 설계·구축하고 활용할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기업도 사내에 고급 수준의 물류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에 힘을 기울일 시점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최근의 제조·유통업계의 기류는 ‘물류의 선진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만큼 선진물류 구축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보다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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