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국 수출전략 다시 짜라](중)강자들의 각축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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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외곽 시장통. 이곳에 위치한 노상 전자제품 매대에서는 컬러TV를 저울에 달아 팔곤 한다. 그만큼 가격파괴가 심하다는 얘기다.

 연간 1200만대의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에어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생산능력이 시장수요의 두배가 넘는 3000만대이기 때문이다. 에어컨만 300여개 이상의 브랜드가 각축을 벌인다. 이에 따라 시장가격은 매년 20%씩 하락하는 추세다.

 ◇쫓는 중국, 쫓기는 한국=한중수교 1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2002년은 한중 양국의 교역분야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 많았다.

 우선 지난해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가전제품 무역에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대중국 가전무역의 역조현상이 고착화 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는 게 관련업계의 분석이다. 작년 11월 현재 한국산 가전제품의 대중국 수출액은 7억6313만달러. 하지만 중국산 수입액은 이보다 616만달러 많다. 

 LG전자의 박순찬 부장은 “중국은 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소비시장이면서 동시에 공급지”라며 “가전제품의 현지 소비자가격은 한국의 30%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기술산업의 집약체라고 하는 자동차분야에서도 지난해 중국의 약진은 눈부셨다. 작년 중국의 자동차 생산대수가 사상 처음 한국을 앞선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2년간 지켜온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자리를 중국에 내줘야만 했다. 중국은 1년새 8위에서 5위로 세단계나 뛰어오른 셈이다.

 그렇다면 이를 가격경쟁력에 의한 아날로그 가전이나 대량생산형 저가 자동차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해도 될까.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발표한 ‘한·중·일 기술경쟁력 비교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기업과 우리 기업의 기술수준이 대등해지는 시기는 향후 4.27년. 하지만 중국기업이 우리와 대등해지는 시기는 이보다 빠른 3.76년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기 이전에 중국에 추월당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자동차산업연구소 유찬용 연구위원도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의 자동차 생산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여 우리나라와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중국에서 겨룬다’ 진검승부 준비하는 강자들=다국적기업 가운데 중국에 진출해 있는 않은 업체는 이제 찾아보기 힘다. GE는 미국, 일본에 설립했던 CT 생산 및 연구개발기지를 이미 베이징으로 옮긴 지 오래다. 노키아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생산기지를,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려 8000만달러를 투자해 연구소를 각각 설립하겠다며 중국에서의 진검승부에 나서고 있다.

 대중국 투자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대만의 경우 이 나라 전체 상장기업 가운데 42%에 달하는 568개 업체가 중국에 진출해 있다. 이들 기업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기업이윤이 대만 본사에서 올린 이익보다 많을 정도다. 이제 중국은 중국 자체만이 아닌 세계 최대·최고 기업이 한데 모여 절대강자를 꼽는 진검승부의 각축장 역할을 하고 있다.

 ◇선진기업 진출전략, 우리와 다르다=이들 기업과 우리 업체의 대중국 진출전략에 있어 차이점은 무엇일까. 중국 전문가들은 우선 중국시장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꼽는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을 낮은 생산원가를 토대로 하는 제조기지로 본다는 얘기다.

 반면 외국 선진기업들은 중국 내수시장 자체에 초점을 맞춰 진출하고 있다.

 “다국적 선진기업의 이같은 진출전략 수정 움직임은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더욱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KOTRA 이영기 홍콩무역관 과장의 얘기다.

 20일 KOTRA 주관으로 열리는 ‘중국진출 전략설명회’ 참석차 방한한 중국 광저우 고과통신기술설비유한공사의 진옌원 총경리(사장급)는 “한국 업체들은 지나치게 ‘관시’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는 여타 선진 업체와 확연하게 대별되는 차이점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월마트를 꼽는다. 96년 처음 중국에 상륙한 월마트는 현지에서 유통·판매하는 제품의 95% 이상을 중국에서 자체 조달하고 있다.

 이 과장은 “월마트의 대중국 전략 핵심은 제품 제공업체인 중국 현지 파트너와의 관계정립에 있다”며 “한국 업체들도 이 점을 유념해 진출전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부터 진행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