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하이닉스 구조조정 자문사인 도이체방크로부터 최종 보고서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금융권에는 최종 보고서가 전달됐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최종 보고서에는 ‘하이닉스 매각 또는 청산보다는 채무재조정과 자구노력을 통한 회사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건상 매각이나 청산이 어려운 만큼 채무재조정을 통한 부채감면방식으로 하이닉스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지난달 말 채무재조정과 비핵심 자산매각 등 자구계획을 주내용으로 하는 초안을 제출했던 도이체방크는 매각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이번에 다시 초안을 수정한 최종안을 내놓았지만 크게 바뀐 내용이 없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도이체방크는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가 채권회수에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 금융기관 차임금 4조6000억원 중 2조원 가량을 전환사채(CB) 발행 방식으로 출자전환하고 남은 차입금은 수년간에 걸쳐 균등 분할상환하도록 한다고 제안했다. 또 이자율 감면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는 재매각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주채권은행의 움직임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최종 구조조정안 도출에 적잖은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부채감면 가능한가=도이체방크는 하이닉스 문제처리의 선행조건으로 부채감면이 필수적이라는 견해다. 하이닉스의 처리방법은 매각 및 청산, 회생 두가지로 요약된다. 이 두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부채감면은 필수적이다. 하이닉스를 매각하기로 방침을 정한 경우에도 수조원의 부채를 떠안고 하이닉스 자산을 매입하려는 매수희망자는 없기 때문이다. 매각을 통한 신속 채권회수를 강력히 희망하는 채권단의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부채탕감 작업을 선행해야만 매각 대상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각협상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반대로 회생을 선택하더라도 회사정상화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는 부채감면은 필수과정일 수밖에 없다. 일처리 순서상 부채감면이 선행요건이라지만 정작 최종 결정권자인 채권단은 난색을 보이고 있다. 하이닉스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상당수의 채권은행들이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80%까지 높여놓긴 했지만 채권단 내부의 반발이 거센 데다 부채감면이 곧 회생지원이라는 해석도 나올 수 있어 선뜻 부채감면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떤 과정 거치나=부채감면은 하이닉스의 회사가치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부채를 감면하고 겨울방학 및 크리스마스 등으로 촉발되는 연말 메모리 특수시기를 맞아 메모리 가격이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면 하이닉스의 가치는 한층 높아지게 된다. 더욱이 부채감면에 따른 금융비용부담이 격감하게 돼 흑자전환의 가능성도 매우 높아진다. 따라서 그만큼 하이닉스의 부실을 털어낼 수 있어 매각가치의 상승은 당연한 결과로 돌아온다. 물론 하이닉스는 비핵심 자산매각 등의 구조조정 노력을 통해 회사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로부터 하이닉스 자산 매수를 희망하는 업체가 등장하고 매각협상 과정에서 부채를 탕감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라면 부채를 미리 감면해주는 게 하이닉스의 매각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즉 부채감면 및 자구노력, 자산가치 상승, 해외매각 등의 수순을 밟는 것이 채권단에도 득이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경우 하이닉스가 누차 주장해온 기업회생 방안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자산가치 상승 이후의 과정에서 매각을 둘러싼 산업계와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하이닉스 처리의 시발점이 되는 부채감면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각종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해외매각 가능한가=마이크론, 인피니온 등 세계 대부분의 메모리 제조업체가 6분기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하이닉스 매수에 나설 해외업체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일한 대안으로 남아있는 마이크론은 12일 미국 아이다호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이크론의 주가가 하이닉스와 매각 MOU를 체결하던 4월에 비해 큰 폭 하락했지만 하이닉스 역시 마찬가지이며 하이닉스 인수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채권단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이크론은 지난번 협상때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 제시될 것으로 믿고 있어 채권단이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지난 4월 채권단 전체회의에서 MOU안에 대한 동의가 나오긴 했지만 동의 자체가 급조된 것이어서 조건이 나빠질 경우 반대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이크론도 말과는 달리 나빠진 내부여건 때문에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므로 해외 재매각 성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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