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IT대통령

 ◆정복남 부국장겸 정보통신부장 bnjung@etnews.co.kr

김대중 대통령에게 재임 중 남긴 가장 큰 업적을 하나 꼽으라면 무엇을 앞세울까. 대통령 본인이야 남북정상의 만남, IMF 극복 등 굵직한 이런저런 업적을 떠올리겠지만 만약 인터넷 여론조사나 일반 국민에게 직접 묻는다면 예상외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광대역 통신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와 리더십을 갖고 밀어붙인 지식정보강국과 관련한 IT대통령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의 여타 부분 공적 예컨대 남북 문제, 경제위기 극복과 공기업 개혁, 정치 민주화, 여성 및 극빈자를 겨냥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정책 등도 후한 점수를 기대할 만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지역별, 계층별로 워낙 차별화되고 있어 공통분모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의 공적으로 온 국민의 컨센선스를 받을 분야는 오히려 비정치적인 정보화, IT분야에 모아질 것 같다.

 사실 김대중 정부는 우리가 경험한 광복 이후 최초의 IT정부라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밀레니엄 패러다임의 변화를 꿰뚫고 있었고 고부가 지식정보강국으로 거듭나는 길만이 이 나라가 21세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IT는 김대중 정부 내내 주요 국정지표였다. 김 대통령 역시 외국과의 정상회담이 있을 때마다 한국의 CDMA 기술과 제품 수출을 위한 비즈니스맨임을 자처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분야이니 만큼 행정부도 총력을 기울였고 ‘합의’라는 단어가 아예 사라진 국회 조차 ‘IT=국가 경쟁력’이라는 등식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한 덩어리가 돼서 뒷받침했다. 덕분에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랭킹 5위안에 진입한 것은 정보화, IT분야뿐이다. 교육·의료 등 삶의 질에서는 10위권에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 것과는 너무 비교된다. 덕분에 가장 ‘정치적’인 대통령이었던 DJ가 가장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이 진정한 IT대통령으로 불리기에는 어딘지 허전한 구석이 많다. 노벨 평화상 수상이 상징하듯이 그의 이미지에 정치적 포장이 너무 강한 탓도 있겠지만 정보강국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족함이 만만치 않게 노정되었기 때문이다. IT를 강조하면서 국가경영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방향은 좋았지만 중복 과잉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정부 재원의 비효율적 집행과 관련, 일부 벤처기업들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고 행정부처간 IT밥그릇 싸움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하드웨어 인프라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지식정보강국으로 가기 위한 지름길인 콘텐츠 육성은 소홀히 했다는 반성도 있다. 한마디로 총론은 훌륭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해 나가는 각론의 치밀성과 계획성이 미흡했다. 이 때문에 전통산업에서 IT산업으로 변화하기 위한 우리 산업 구조의 질적 변환은 어느 정도 동력을 얻어냈지만 기형적 발전이라는 우려도 함께 증폭됐다.

 정보산업연합회가 최근 주최한 한국CIO포럼에 참석했던 외국 전문가들은 이같은 김대중 정부의 디지털 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SAP의 디트마 팔러 부사장은 “한국 정부는 정보화에 대한 의지는 강하지만 구체적 전략이 없다”고 했고 미국 정부의 정보화 실무자인 커머스원 피터슨 부사장은 “양국을 비교할 때 총괄 책임자의 부재가 한국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우리 정부와 국민이 귀담아들어야 할 핵심을 제시했다. “한국은 e정부 구현의 시작 단계이며 집권 여당이 바뀌더라도 비전을 바꾸지 말고 정보화를 계속 추구해야 사업기회 및 유능한 인재의 국가적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IT만이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비전이고 일단 그 방향은 제대로 잡혔으니 누가 대통령이 됐건 어떤 세력이 국가 경영을 맡건 이 대세를 발전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이제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두고 있다. 내년 12월이면 16대 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벌써부터 자천타천 대권 후보들이 ‘운동’에 나서고 있고 거론되는 인사만 무려 10여명에 이른다. 모두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비전을 앞세우고 국민에 봉사할 적임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년 대선에서 이들이 승부수를 띄워야 할 분야가 바로 IT라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가 기초를 세웠다면 이제는 ‘집’을 완성해야 한다. 어차피 국민은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 관심사다. 누가 IT를 통해 대한민국을 리모델링하고 리노베이션할 것인가는 이제 중요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