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전업계의 핵심테마는 단연 ‘디지털’이다.
특히 올해는 ‘방송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지상파 디지털TV 본방송이 시작되면서 디지털TV를 포함한 디지털 정보가전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디지털 가전시장이 본격 개화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가전 3사를 포함한 가전업체들이 연초부터 PDP TV·LCD TV·프로젝션TV 등 디지털TV를 비롯해 DVD플레이어·디지털캠코더·디지털카메라 등 디지털 AV제품은 물론 디지털냉장고·디지털김치냉장고 등 디지털 백색가전을 속속 선보인 것도 이 같은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로 분석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가전업계 최대 히트상품은 디지털가전이 아닌 백색가전 분야에서 나왔다. 김치냉장고가 바로 그것.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틈새상품에 불과했던 김치냉장고가 올해는 100만대, 1조원 이상의 거대 시장을 형성하면서 에어컨·냉장고를 제치고 최대 인기상품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것.
김치냉장고 다음으로 인기를 모은 제품으로는 DVD플레이어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첫 출시된 삼성전자의 DVD+VCR 복합제품의 경우 국내외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단일품목으로 100만대 판매를 돌파, 디지털 제품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이처럼 올해 가전산업은 세계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간판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포함한 IT산업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DVD플레이어 등 디지털 제품과 김치냉장고 등 백색가전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매출과 이익 규모가 소폭 증가하는 등 위기에 강한 제조업의 면모를 보여줬다.
◇디지털 AV가전=본격적인 디지털TV 방송 시대를 맞은 올해 가전업체들은 일명 ‘벽걸이 TV’로 불리는 PDP TV를 비롯해 LCD TV·LCD 프로젝션TV·완전평면HDTV 등 다양한 크기와 방식의 디스플레이를 채용한 첨단 디지털TV 신제품을 대거 출시하고 열띤 판매경쟁을 벌였다.
특히 지난 8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된 PDP TV 특소세율 인하(15%→1.5%)를 계기로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가전 3사와 국내 진출한 일본 가전업체들은 40인치에서 최대 63인치에 이르는 PDP TV 신제품을 발표하고 벽걸이TV 시장 선점에 본격 나섰다.
이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지난 7월 세계 최대 크기인 60인치 모델과 40인치 모델을 앞세워 대대적인 판촉 및 마케팅 활동에 돌입하는 등 기선제압에 나선 결과 내수시장에서만 4500여대를 판매하며 초기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지난달 전격 시행된 특소세 인하(15%→10%)로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대화면 프로젝션TV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파브’와 LG전자의 ‘엑스캔버스’가 전체 수요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등 양대 축을 형성해 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16대9 와이드 화면에 수납장을 마련한 HD급 3개 모델과 PC 모니터 수준의 XGA급 고해상도·고선명 화질을 실현한 모니터 겸용 프로젝션TV 3개 모델을 잇따라 출시, 디지털TV의 대중화에 적극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LG전자의 ‘플라톤’과 삼성전자의 ‘명품’이 수년째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완전평면TV 시장에서는 디지털방송 시대를 맞아 29인치에서 36인치에 이르는 디지털 완전평면HDTV를 앞세운 대우전자의 상승세가 단연 돋보였다.
올해 AV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품목은 단연 DVD플레이어. 그간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판매로 이어지지 않았던 DVD플레이어는 업계의 공동마케팅 노력에 힘입어 올들어 폭발적인 판매신장세를 보여줬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AV업체들이 올 한해 동안 판매한 DVD플레이어는 17만∼18만대로 이는 지난해보다 무려 3배 정도 급증한 수치다. 이 같은 판매 증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내년에는 국내에서만 35만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은 제품은 삼성전자가 틈새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콤보DVD’. VCR와 DVD플레이어를 결합시킨 콤보DVD는 50만∼70만원대의 만만치 않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신혼부부와 젊은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수많은 업체들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는 디지털사진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높아진데다 참여업체수 증가로 제품가격이 크게 떨어져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코닥·소니코리아·삼성테크윈·LG상사 등 주요 디지털카메라 업체들에 따르면 올해 내수판매 규모는 25만여대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찾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늘어 이같은 추세라면 내년에는 40만대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들어선 제품의 고급화도 급진전되면서 지난해 100만∼200만 화소급 제품에 이어 최근엔 300만 화소급 제품이 속속 출시돼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또한 이 시장에선 업체간 열띤 경쟁 속에서 LG상사가 국내 공급하는 캐논 제품이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캠코더 시장에서도 디지털 제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소니·JVC·샤프·히타치 등 외산 제품이 주도하고 있는 캠코더 시장에선 JVC의 약진이 돋보였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소니 제품이 여전히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지만 JVC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차세대 휴대형 디지털오디오로 신세대 소비자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MP3플레이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이 자체 생산을 중단한 가운데 디지털웨이·엠피맨닷컴·유니텍전자 등 벤처기업들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졸업·입학시즌과 혼수시즌마다 소비자들이 빼놓지 않고 구입하는 제품이 바로 컴포넌트오디오일 것이다. 컴포넌트오디오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디자인을 강조한 실속형 제품이 속속 출시돼 ‘1가구 2오디오’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 시장에선 이트로닉스가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대화면TV와 DVD플레이어, 앰프 내장형 오디오 등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홈시어터(가족극장)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백색가전=올해 가전업계의 최대 히트 상품은 김치냉장고다. 특히 연중 최대 성수기인 김장철을 맞은 요즘 가전 및 유통업계의 관심은 모두 김치냉장고에 쏠려있다.
단일품목으로 시장규모만도 100만대,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김치냉장고 시장의 선점 여부에 따라 업체간 명암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전망되면서 만도공조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저마다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올들어 LG전자와 삼성전자는 ‘1124’와 ‘다맛’ 브랜드를 앞세워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결과 부동의 1위 업체인 만도공조의 시장점유율을 상당부분 잠식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딤채’의 인기를 뛰어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올해도 가전업계의 최대 관심 품목은 역시 에어컨이었다. 지난 여름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가 지속되면서 가전업체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갖게 했던 에어컨은 경기 한파 탓인지 기대치에는 못미치는 실적을 남겼다.
올해 에어컨 시장에서는 LG전자와 삼성전자간의 선두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산소에어컨’을 앞세운 대우전자와 만도공조·센추리·캐리어 등 에어컨 전문업체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올해 냉장고 시장은 경기침체 여파로 일반 냉장고 판매는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줄어들었으나 양문여닫이형 냉장고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데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갔다.
이 시장에선 LG전자의 ‘디오스’와 삼성전자의 ‘지펠’이 외산 제품을 제치고 전체 수요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가스오븐레인지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협력을 통해 동양매직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동양매직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소형 및 기타가전=올해 전기압력밥솥 시장에선 성광전자의 ‘쿠쿠’가 주부들로부터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청소기 시장에선 획기적인 디자인을 선보인 LG전자의 ‘싸이킹’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또한 정수기 시장에선 ‘코디’ 돌풍을 일으킨 웅진코웨이의 정수기가 인기상품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디지털피아노 부문에선 벨로체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선풍기 시장에선 중국산 저가 수입품의 대량 유입으로 국내 업체들이 맥을 못추고 있으며 믹서·토스터·커피메이커·다리미 등 기타 소형가전 제품시장은 특별히 눈에 띄는 신제품이 출현하지 않은 탓인지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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