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특소세 보다 갑근세를...

 ◆이택 산업전자부장 etyt@etnews.co.kr

특소세 파동이 일단락됐다. 인하 시기와 폭을 싸고 여야는 물론 언론까지 갈팡질팡하던 일부 품목의 특소세가 이번주 초 정식으로 인하됨에 따라 요즘 가전과 자동차 판매장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고가사치품에 붙는 특소세가 인하되면 제품 가격이 내려가고 소비가 촉진된다. 고급차일수록, 고가 골프채나 TV일수록 값이 내려가는 폭도 커진다. 실제로 에쿠스 리무진은 500만원 가량 가격이 인하됐지만 배기량 2000cc급은 몇십만원 떨어지는 데 그쳤다. 에어컨도 마찬가지.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되살려 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벌써 약효가 발생하는지 특소세 인하를 기점으로 고가품 판매가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 보는 봉급쟁이들은 착잡하다.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봤자 살림살이도 빠듯한 판에 특소세가 내렸다고 어느날 덥석 에쿠스를 살 일도 없고 프로젝션TV를 들여 놓을 거실도 없다. 골프채·프로젝션TV는 남의 일일 뿐이다. 게다가 룸살롱 특소세까지 내려주겠다는 정부의 발표에는 어안이 벙벙하다. 고가사치품을 구입할 수 있고 호화 룸살롱을 드나들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에겐 어차피 100만∼200만원의 가격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산다. 물론 서민들도 이 참에 평소 원하던 값비싼 제품 한둘은 사들일 만하지만 대세는 못된다.

 특소세라는 정책 대안을 통해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올곧게 형성하는 것이다. 가진자들의 소비를 무조건 죄악시하거나 매도하는 분위기가 엄존하는 한 특소세 인하도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

 IMF 당시 경험해봤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사치성 소비재가 급증한다며 눈을 흘겼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외국 가서 쇼핑하자”며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갔다. 국내 소비를 통해 자금이 돌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해외로 흘러 나가느니 국내에 떨어뜨려야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제대로 된 소비문화 정착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봉급쟁이들은 화가 난다. 월급명세서를 받아 쥘 때마다 다달이 불어가는 제세공과금란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의료보험에, 국민연금에 오르는 것 투성이어서 가처분 소득은 거꾸로 줄어들고 있다며 하소연이다.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세금으로) 봉급쟁이들은 아무리 제세공과금이 올라도 그것이 국가 경제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감내한다. 소득이 재분배되고 의료보장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삶의 질 향상에 자신의 세금이 바르게 쓰여진다면 군소리가 없을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건강보험료는 올랐는데 당장 혜택은 의사와 약사에게 돌아가고 국민연금을 냈더니 공적자금이나 주가 받치기로 허공에서 사라진다는 의심을 풀지 못하고 있다.

 소비를 통해 내수를 진작시키려면 특소세가 아니라 차라리 갑근세와 제세공과금을 내려라. 국가 재정 형편이 허락지 않는다면 조세 정의부터 바로 세워라. 그래야 봉급쟁이들의 허탈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 아닌가. 봉급쟁이들을 봉이 아니라 아예 바보로 만들어서는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는커녕 생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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