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대중국 진출전략이 생산기지 대거 이전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어 향후 국내 전자관련기업들의 대중국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25일부터 열흘간의 일정으로 중국 삼성 현지 생산법인을 방문, 중국 사업전략 강화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중계획에는 이달 29일 주룽지 총리 예방을 포함해 내달 2일 상하이에서 전체사장단회의를 개최하는 등 그 어느때보다 대중국진출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모이는 사장단회의에서 이 회장은 부문별로 현지화 전략을 보고받은 뒤 반도체 8인치 웨이퍼 가공라인을 제외한 휴대폰, 백색가전, 각종 첨단부품의 현지생산 계획을 강도높게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전기·SDI 등 전자부문의 핵심기업들이 중국 현지법인의 매출규모를 대폭 늘리는 등 중국 현지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데다 최근 이 회장의 방중을 앞두고 사장급이 책임지고 있는 ‘삼성중국본사’를 부회장급으로 격상시키는 등 중국사업이 대폭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전 전략은 이미 시작=현재 중국에 설립돼 있는 전자계열 생산법인은 총 19개사로 주재원 250명에 생산인력 3만2000여명이 가동되고 있다. 올 생산규모는 100억달러에 이를 전망. 중국을 전략적 생산기지로 삼고 생산의 무게중심을 국내에서 중국으로 이전하는 삼성의 구상은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코닝 등 전자관련 계열사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께 삼성전기가 밝힌 ‘해외법인 생산비중 강화’ 전략만 해도 중국을 겨냥한 것이나 매한가지다. 올 26억달러의 삼성전기 예상매출 중 17억달러 정도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52%의 해외 생산비중을 올해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냉장고·VCR·모니터·프린터 등 가전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이동통신단말기와 반도체 생산여부가 관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톈진에 유럽식이동전화(GSM) 단말기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데 이어 허지엔사와 CDMA 합작회사 설립협상을 마무리짓고 있다. 또 PDP TV를 비롯한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생산도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
◇생산기지로 부각되는 중국=세계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전세계 정보기술(IT) 관련제품의 25%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관은 향후 5년 정도면 중국은 전세계 부품생산의 5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까지 중국에 생산법인을 설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생산비 절감, 노사문제 해소 등이 이유였지만 이제는 세계 부품의 전략적 요충지로 성장한 중국 자체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삼성 기흥반도체공장을 방문한 중국 왕진화 쑤저우 부시장이 삼성전자의 중국투자 증대를 요구한 것은 하나의 상징적 예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자국내에서 생산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이미 가동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삼성의 고민=업계의 관심은 삼성이 향후 중국에서 추가 생산하려는 신규품목과 규모, 이전속도다. 중국 현지법인 관계자는 “생산기지의 이전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며 “휴대폰·컴퓨터·반도체 등 3가지 품목의 생산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중국 주룽지 총리를 만난 이 회장이 “기초적인 반도체 제품외에 장기적으로 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도 중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던 점을 상기해 볼 만하다. 즉 고부가가치 제품의 중국 현지생산은 이미 확정된 사안이며 남은 것은 어떤 품목을 언제, 어느 규모로 시작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문제는 반도체”라고 말했다. 즉 삼성이 중국을 5년 앞지르고 있는 품목은 겨우 반도체 하나라고 보면 되는데 만일 중국에서 전 공정에 걸친 반도체를 생산할 경우 기술격차는 1∼2년 정도로 좁혀진다는 우려다.
그러나 삼성이라고 이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의 잠재력이 무서워 무작정 거부하고 있다간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 관계자는 이와 관련, “중국에서 8인치 웨이퍼 생산을 요구하고 있으나 거기까지는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은 세워져 있다”며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중국 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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