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현대정보기술 정보서비스사업본부장 상무 yhlee77@hit.co.kr
세계 경제와 금융의 심장부인 뉴욕 맨해튼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이 여객기 충돌 테러로 완전 붕괴되어 잿더미가 된 지 2주가 흘렀다. 전세계가 경악할 이번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2차 테러에 대비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이곳에 입주해 있던 많은 기업들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데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임직원을 잃은 기업들은 새로 사람을 충원해야 하고 수많은 자료를 날려버린 기업들은 데이터 복구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사업을 펼치는 기업들이 있다.
지난 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 사건을 계기로 각종 자연재해 및 테러에 대비 BCP(Business Continuity Program)을 철저히 준비한 기업이 바로 그들이다.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하고 있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올스테이트 보험, JP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은 93년 폭탄테러 사건 때 BCP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이번에 훌륭한 인재들과 핵심시설을 잃기는 했지만 어떠한 고객정보나 거래정보도 손실되지 않는 등 금융자산정보를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다. 테러발생 하루만에 비상사무실을 열고 바로 정상적인 업무에 들어간 업체들도 적지 않다.
JP모건스탠리의 예를 한번 보자. 이 회사는 11일 오전 10시 건물붕괴와 동시에 재해를 선포하고 모든 전산시스템을 백업센터로 전환했다. 17일 나흘만에 개장한 뉴욕증권거래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JP모건스탠리는 비록 주가는 바닥을 면치 못했지만 11일 테러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JP모건스탠리가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미러링 방식을 이용하는 선가드(SunGard)의 필라델피아 데이터백업 센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지난 몇년간 정보화는 급속도로 진행됐으나 재해에 대비하는 우리의 준비태세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책은 차치하고 라도 국내 기업들 가운데 재해복구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곳은 몇 군데에 불과하다. 일부 대기업이 재해복구시스템을 구축해 본사나 사업장 등에 사고가 발생해 전산망이 망가질 경우 곧바로 지방도시 등에 위치한 백업센터의 자료를 넘겨받아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정도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에 대해 무관심한 실정이다.
S증권의 경우 99년도 미국 메릴린치 증권사의 백업센터를 벤치마킹해 가락동에 메인센터를 두고 실시간 백업센터를 분당에 구축하여 재해발생시 15분이내에 대고객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은해 중에선 한미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재해복구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FEMA(the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 의하면 재해가 발생할 경우 재해대책(BCP)를 준비해 놓고 있지 않은 기업의 60%는 생존하지 못하고 2년 이내에 도산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의 근거로 지난 95년 1월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지진 때 1700개에 달하는 금융기관, 기업의 주전산기가 파괴되면서 복구체제가 미흡했던 많은 기업이 파산했던 점을 그 사례로 들고 있다.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테러를 사업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 재해복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삼았듯이 이번 사건은 정보화의 급진전에 매달려 사업확대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우리 기업에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에 대한 필요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로 하여금 재해복구시스템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재해대책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보험성 대책이 아니라 사업의 연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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