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IT통합전문화SI그리고그 이후

 시스템통합(SI)이라는 산업이 국내에 자리잡은 지도 이제 20년 안팎. 전통 산업에 비해 일천한 역사지만 정보기술(IT)의 비약성을 감안하면 엄청난 시간의 흐름이다. 청춘은 약관(弱冠)의 나이에 미래의 꿈을 설계한다고 한다. SI산업도 이제 과거를 되새기고 미래의 비전을 준비할 때다. IT의 통합과 전문화를 넘나든 SI산업, 그 이후는 무엇인가?

 

 ◇SI의 변천-철도청 화물심사에서 고속철도 통합정보시스템까지

 SI의 단초는 철도청내 최초의 전산화 프로젝트인 화물심사 전산화 용역사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청은 수작업에 의존하던 화물관련 수입장표 심사업무를 여객심사·수입심사·수송통계 등으로 프로그램화해 화물의 전수심사, 수송통계의 자동획득, 장표 재고관리의 효율화를 꾀했다. 69년에 진행된 이 용역사업은 SI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던 때인 만큼 오직 인력과 예산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용역사업을 주도했던 SI업계 한 원로는 “단지 10여분간의 컴퓨터 사용을 위해 개발자들은 몇시간씩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렸다”며 “지금의 SI 형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새삼 느낀다”고 회고한다.

 격세지감은 오는 2004년까지 추진되는 사업인 고속철도 통합정보시스템과 80년의 철도청 승차권 온라인발매시스템을 비교할 때 여실히 드러난다.

 고속철도 통합정보시스템의 총 사업비는 1048억원. 하드웨어와 프로그램 개발비를 포함해 총 155만달러(약 20억원)를 투입했던 승차권 온라인발매시스템의 규모보다 50배가 늘어났다. 개발분야도 발매시스템과 같은 단일업무에 그쳤던 것이 영업관리, 운행관리, 차량검사·시설, 경영 등 전 분야로 확대됐다. 심지어는 항공·선박 등 유관분야와의 연결을 통해 여행포털로까지 확장하는 큰 그림이다. 시스템 구성도로 집약된 고속철도 통합정보시스템에는 행정자치부·재정경제부·건설교통부 등 정부 유관부처, SI업체·신용카드사·무선인터넷서비스업체·여행사·호텔 등 민간기관, 그리고 고객 등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

 한국SI연구조합에 따르면 올해 국내 SI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으로 총 22조원, 세계시장은 2005년까지 61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규모 22조원, 시장 참여업체 150여개로 성장한 SI는 이제 하나의 산업군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정지작업에 돌입할 때가 왔다.

 

 ◇SI의 정의-통합이냐 전문이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에 관한 기획, 입안, 구축 나아가 실제 운용까지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해당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작업.’

 SI를 가장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정의다. 정보시스템 기기가 다양화·거대화·복잡화됨에 따라 기업에서는 어떤 네트워크를 구축해야할지 어떤 소프트웨어를 선택해야할지 판단하기 어렵게 됐으며 이를 위해 시스템의 설계, 최적의 하드웨어 선정, 사용자 요건에 맞춘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의 개발, 시스템의 유지·보수 등을 서비스하는 것이 SI라는 것이다. SI작업을 통해 고객은 비로소 생산비 절감과 품질 제고라는 1석 2조의 효과를 얻게 된다.

 이를 바꿔 말하면 SI는 통합이다. 업무와 IT의 통합이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이다. 업무 프로세스가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고객은 최소의 손실과 최대의 만족을 얻는다.

 “고객에게 가치(value)를 창출하고 성공(success)을 지원하는 사업이 SI다”라는 업계 전문가의 설명이 한층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통합에는 많은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통합을 한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는 치밀한 순서도로 얽힌 단위업무가 나타난다. 고속철도 통합정보시스템은 크게 4가지의 정보시스템으로 구성되지만 4개 분야는 또 다른 시스템 세포들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영업관리시스템은 예약·발매, 화물영업, 역무자동화, 상품판매관리, 수송능력조정, 수익관리 등 10여개의 전문적 단위시스템 위에 존재할 수 있다. 통합을 위한 전문화의 단면이다.

 지금까지 통합이 SI의 발전과정이었다면 전문화는 아직 초기단계다. 국내 SI산업은 특히 그렇다. 통신, 금융, 제조·생산, 물류·유통, 병원정보 등 산업별 특화는 취하되 SI로의 전문화는 아직 부족한 상태다.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계관리(CRM), 기업정보포털(EIP) 등 솔루션 중심의 전문화도 추진되고 있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비해 영향은 미미한 편이다.

 

 ◇SI의 현황-기술, 산업구조, 해외사업의 현주소

 그렇다면 국내 사정은 어떠한가? 국내 SI업체의 기술수준은 격차가 심하다. 현장경험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는 관행상 대형 프로젝트를 상대적으로 많이 이행한 상위 몇몇 업체에 기술이 편중된 실정이다. 하지만 상위 대형 SI업체들도 요소기술을 보유한 고급 기술인력 확보에는 크게 뒤져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형편이다. 실제로 ‘정보기술력 평가모형(CMM) 클라스 3’을 받은 업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CMM 클라스 5’ 인증기업은 전무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는 가까운 인도가 20여개의 CMM 클라스 5 인증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매출대비 수익률이 5% 미만이라는 함수관계도 국제 수준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는 대목이다. 이는 대형 공공 프로젝트 수주시 초래되는 업체간 과열경쟁으로 인한 가격덤핑이 주범이다. 일부 선진국의 경우, SI사업자를 선정할 때 가격요소를 배제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선진국은 가격에 대한 합의는 최종 선정된 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결정함으로써 프로젝트 품질(quality) 중심의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안팎으로 열악한 국내 시장여건을 보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SI업체들 사이에 추진되는 것이 해외시장 개척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질적인 측면보다 양적인 확대에 치중해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구체적인 사업 솔루션이나 전략 없이 현지 사무소 또는 법인 설립에 그쳐서는 곤란한 일이다. 김영태 LGEDS시스템 고문은 이를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부사장의 말을 들어 조언한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비교적 성공신화를 많이 창출한 중국 및 인도가 해외사업을 하는 형태와 그렇지 못한 일본이 해외사업을 하는 형태를 비교하면서 중국·인도는 ‘현지 독립적’, 일본은 ‘본사 종속적’인 것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그는 국내의 해외사업 형태도 일본식을 따르고 있어 아쉽다는 설명이다.

 

 ◇SI 그 이후-경계가 없다?

 SI 그 이후는 공상과학영화의 지구 종말 이후만큼 비장미는 없지만 긴장미는 충분히 발산한다. 비즈니스 모델이 다양해지고 경쟁이 과열되면서 SI업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딜레마는 다름아닌 무너진 경계선이다. SI산업에는 이미 경계가 없어져 버렸다. 내부적으로 SI산업 자체가 설계에서 구축, 운영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뤄야 하는 속성을 가진 탓도 있지만 외부 환경도 이에 못지 않다. 최근 SI에 대한 고객의 요구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그동안 컨설팅, 하드웨어, 시스템 구축 등으로 구분되던 업종별 시장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액센추어·딜로이트컨설팅 등 세계 굴지의 컨설팅 전문업체들이 과거 경영 컨설팅이나 정보화 전략을 수립하는 차원의 영업에서 탈피해 SI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는가 하면 IBM·HP·컴팩·후지쯔 등 중대형 컴퓨터업체들도 단순 하드웨어 공급차원을 넘어 솔루션을 포함한 SI영업방식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보험·캐피털 등 금융권의 CRM, 데이터웨어하우징(DW), 유가증권관리시스템 등 전문 정보시스템 영역에서는 컨설팅 또는 중대형 컴퓨터업체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기존 SI업체들은 관련시장을 송두리째 내주는 형편이다.

 중견 SI업체 사장은 “이제는 SI사업의 경쟁대상이 글로벌해졌다”며 “경쟁력의 관건은 충분한 수행경험(best practice)의 확보”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IT서비스 제공업체 EDS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가’라는 소개 책자에서 “신뢰를 쌓고 개선을 추구하며 경계를 허문다”고 자신들을 정의했다.

 정보통신진흥협회에 따르면 SI는 컴퓨터관련 서비스로 분류되고 다시 일괄 시스템통합, 컨설팅 및 기획, 설비 및 네트워크 구축, 소프트웨어 개발 등 9개 세부항목으로 정리됐다. 또 시장조사기관인 IDC는 컨설팅, SI, 시스템 구축, 아웃소싱, 소프트웨어 개발 등 11개 항목으로 분류, IT서비스의 포괄성을 전문성으로 다시 요약했다.

 고객의 성공을 위해 정보시스템을 통합하는 SI의 출발점은 결국 고객의 비전과 전략에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20년은 지금까지의 20년과는 또 다른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SI의 향후 20년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대상의 SI가 모바일기기의 등장으로 개인 대상의 SI로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해질수록 SI를 빼놓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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