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헬머 감독의 ‘투발루’
단편영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파이트 헬머 감독의 데뷔작 ‘투발루’는 활동사진이 발명될 당시 초기의 미덕과 팬터지를 복원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새롭고 즐거운 영화의 노스탤지어를 제공한다.
투발루는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9개의 작은 산호섬으로 이뤄진 나라. 영화속에서는 사랑하는 주인공들이 보물지도를 들고 찾아 떠나는 유토피아와 같은 의미며 곧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영화가 지니는 미덕은 말로서 설명되는 지루함이 아니라 가슴과 느낌으로 전해지는 움직임에 있음을 보여준다.
비가 새고 다소 음산하며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극도로 제한된 언어와 공간 속에서도 다소 낡은 만화를 보는 듯한 채색효과와 독특한 디테일로 숨어 있는 감성을 자극한다.
차라리 목욕탕에 가까운 낡고 거대한 수영장. 입장료로 돈 대신 단추를 받는 뚱뚱한 엄마와 앞을 못 보지만 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위세를 피우는 아버지, 수영장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안톤이 이곳의 주인이다.
몇몇의 단골이 있긴 하지만 썰렁하기만한 수영장에서 안톤과 엄마는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수영장을 돌리는 기계 ‘임페리얼’이 돌아가면 늘 활기가 넘치는 수영장인 것처럼 연극을 되풀이한다. 어느날 선장과 금붕어를 들고 다니는 그의 아름다운 딸 에바가 수영장을 찾고 안톤은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늘 에바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훔쳐보는 안톤.
하지만 안톤의 탐욕스러운 형인 그레고어는 에바를 차지하는가 하면 수영장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갖은 방해를 한다. 급작스럽게 죽은 선장의 보석상자에서 투발루의 보물지도를 발견한 에바는 항해를 하기 위해선 임페리얼 부속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몰래 수영장에 침입해 임페리얼을 훔치려 한다.
하지만 안톤 역시 임페리얼을 되찾기 위해 한번도 나서지 않았던 수영장의 문 밖으로 과감히 발을 내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검시관은 낡고 위험한 수영장을 보수할 것을 지시하지만 이들에게 보수에 필요한 엄청난 돈이 없다. 엉뚱하고 황당하지만 사랑이 있는 인간의 세상이라는 것과 꿈과 희망을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배경은 영화 ‘델리카트슨’과 여러가지로 닮아있다. 감독은 흑백필름으로 촬영한 후 각 시퀀스마다 독특한 컬러를 설정해 컬러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의 옷을 입힌다.
마치 채색된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영화적 질감이 주는 신선한 유쾌함과 함께 오랜만에 국내에 얼굴을 내민 드니 라방이나 ‘루나파파’의 매혹적인 여주인공 술판 하나토마의 매력 역시 배우가 살아있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평론가 yongjuu@hotmail.com>
많이 본 뉴스
-
1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2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3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4
美-中, “핵무기 사용 결정, AI 아닌 인간이 내려야”
-
5
5대 거래소, 코인 불장 속 상장 러시
-
6
현대차, 차세대 아이오닉5에 구글맵 첫 탑재
-
7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
8
美 한인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미국 올 생각 접어”
-
9
아주대, GIST와 초저전압 고감도 전자피부 개발…헬스케어 혁신 기대
-
10
국내 SW산업 44조원으로 성장했지만…해외진출 기업은 3%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