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경 KTF 사장
지난달 22일부터 5일 동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국제전자상거래협의체(GBDe) 연례 운영위원회에 의장 자격으로 참가했다. 전자상거래 전반에 걸친 주제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각국의 현안도 발표됐다. AOL, 비벤디, MIH 등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들의 CEO들도 자리를 함께 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이번 회의에는 그 동안 전자상거래 분야에 있어 국제적인 활동이 거의 전무했던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의 정부 대표들도 대거 참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만큼 전자상거래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 회의에서 다루어진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융합(convergence)이었다.
이전까지 정보통신 분야의 융합 형태는 기술적인 융합이 주류를 이루어 왔다. 컴퓨터와 통신, 방송기술이 융합돼 ‘인터넷’이라는 범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탄생시킨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음성은 물론 데이터, 영상까지 함께 송수신하는 기술이 보편화되고 있다. 유선과 무선도 서로 융합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디지털화로 가능해진 것이다. 머지 않아 IMT2000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이동전화를 통해 영상통화를 하면서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주고 받는 편리한 세상이 올 것이다.
기업의 사업영역도 확장과 융합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포털업체들이 온라인게임 사업을 추가한다거나 이동통신사업자들이 무선인터넷을 통해 전자상거래 사업을 병행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인터넷의 쇼핑몰은 인터넷과 택배가 결합된 모습으로, 무선결제는 통신과 금융이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초기 기술융합의 형태에서 서비스 융합의 형태로 그 흐름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국내 인터넷 사용자는 2100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도 2년 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전자상거래 인프라가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산업에서 활용되는 비중이 미진하고 법률과 제도적 준비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보화시대 산업영역간 융합의 조류에 뒤처지는 법률과 제도가 산업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달 27일 정부가 청와대 보고를 통해 밝힌 ‘e비즈니스 확산 국가전략’은 산업 전반에 걸친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청사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해 온 e비즈니스의 체질을 개선하고 계획, 조달, 생산, 판매 등 모든 프로세스의 e비즈니스화에 역점을 둔 것은 바람직한 방향설정이다.
여기에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서비스 영역간의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서비스 융합으로 자칫 복잡해지기 쉬운 e비즈니스의 시장을 교통정리해 주는 역할이다. e비즈니스 시장에서의 굴뚝기업과 벤처, 제조업과 IT산업간의 협업체계를 권장하고 정부부처간의 중복투자와 정책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또한 이번에 보다 격상된 전자거래정책심의회가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 주기를 희망한다.
전자상거래가 21세기 구매형태의 주류로 자리잡고 e비즈니스가 경제부흥을 가져올 성장엔진이 될 것임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21세기에는 온라인을 통한 구매행태가 기존 오프라인의 구매행태와 대등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는 기존의 실물화폐가 지불되는 대면적인 거래행태가 아닌, 정보와 신용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치밀하고 완벽한 시스템의 구축이 중요하다.
정보화시대의 서비스 융합을 편리한 생활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지혜, 정부부처의 체계적이고 다각적인 법률과 제도의 정비, 그리고 기업의 차별화되고 경쟁력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집중화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정보통신 분야의 국가경쟁력은 제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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