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2-디지털문화 대혁명>특별기고-백욱인 서울산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2000년 벽두부터 언론은 디지털과 인터넷에 관한 기사로 도배하다시피했다. 디지털과 인터넷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마냥 희망에 차있었다. 세계 제일의 사이버 주식거래가 이루어지는 우리나라는 인터넷 선진국이라느니,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PC방을 배우러 견학을 온다느니, 기마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은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잘 나갈 것이라느니…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밑도 끝도 없는 낙관론과 희망이 난무하였다.







인터넷과 디지털이 내실도 없이 부풀려지는 사태의 뒤에는 코스닥의 비정상적인 주가 오름세가 도사리고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텔레비전과 신문의 보도는 디지털 경제가 이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앞으로 모든 경제가 디지털로 재편될 것 같은 환상을 부추겼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의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끓는 냄비처럼 요란스럽게 달아오르던 벤처 열풍이 물벼락을 맞았다. 얼마 전만 해도 이러한 냄비 현상이 벤처기업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코스닥시장이 죽을 쓰기 시작하자 한국인의 쉽게 달아오르는 특징을 찬양하던 사람들은 태도를 바꾸어 냄비 근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하였던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많은 기업들과 환상에 들뜬 사람들은 인터넷을 새로운 시장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들은 인터넷이 경제적인 도구로 활용되도록 만드는 숨은 힘을 보지 못했다. 인터넷은 상품과 서비스가 사고 팔리는 시장이기도 하지만 네티즌의 생각이 오고가는 광장이기도 하다. 인터넷은 일류와 삼류를 서로 만나게 하고, 창의력과 실행력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며, 어른과 아이가 함께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의 네트에는 그런 문화가 턱없이 부족했다.







넷은 독점과 지배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참여와 연대가 만들어지는 이중적인 공간이다. 넷은 권력의 지배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본과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지배의 공간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상업화되기 이전의 넷 공동체는 독립된 주체간의 자발적 참여와 자유로운 연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본이 넷을 온통 시장바닥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넷 공동체는 점차 조작된 가짜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 시작했다.







산업시대의 권력은 물질의 힘에서 나왔다. 광화문 앞에 버티고 선 탱크와 포항 제철의 펄펄 끓는 쇳물이 그 시대 힘의 상징이었다. 힘센 대형 정당과 재벌 기업이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였다. 대형 독점 권력의 사전에는 나눔이나 합의란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물질의 힘을 정신의 힘으로 바꾸고, 소수의 독점 권력을 다수의 참여와 연대에 입각한 새로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자신의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해커와 와레즈(Warez)에서 카피레프트를 주장하는 부류에 이르기까지 넷은 앤티, 아나키즘과 친화력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 욕설과 비틀기, 패러디로 난무하더라도 넷이 열어준 새로운 자유와 연대의 가능성을 목욕물 버리듯 전부 내다버리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얼빠진 디지털 캠페인에 송두리째 빠져있는 사람과 공동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거나 「아날로그」없이 「디지털 세상」을 건설하려는 조급함은 모두 현실성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보화의 기반은 산업화이고, 디지털의 토대는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의 새로운 문화는 결국 우리 삶의 현장에서 싹튼다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 이런 난리 북새통에서 보통 사람들은 빛의 속도로 달려오는 디지털 유령이 마냥 무섭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은 유령이 아니다. 다가오는 디지털 세상을 잘 맞이하려면 디지털에 대해 환상을 갖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디지털의 실체를 잘 이해하면서 착실하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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