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매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변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까지는 인터넷과 PC가 디지털 문화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인터넷과 PC, TV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현재 안방과 거실을 점령하고 있는 TV가 아날로그에 이어 디지털 시대에도 「디지털 방송」을 통해 미디어의 제왕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SBS가 국내 최초로 지상파 디지털 시험방송을 시작한 데 이어 방송의날인 지난 3일 KBS와 MBC도 방송에 돌입함으로써 본격적인 디지털 방송시대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에 따라 지상파 3사는 일반 시청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지 자주 안내방송을 내보내고 「고선명(HD)TV 특집 드라마」라는 명칭이 붙은 단막극을 제작·방영하기도 했다.
이제 기존 아날로그 방송에 비해 한차원 높은 고화질을 만날 수 있는 디지털 방송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디지털 방송 수신을 실현시키는 디지털 신호는 아날로그 신호에 비해 잡음의 영향을 덜 받고 저장 및 신호처리가 간편하며 손상신호를 회복시킬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디지털TV 역시 잡음 및 고스트 현상이 없고 다채널 방송 및 고해상도
방송이 가능하며 가로 대 세로의 비율이 16 대 9인 와이드 화면을 제공한다.
또 고품질의 서라운드 오디오 방송은 물론이고 멀티미디어·데이터 방송 등 지금까지는 TV와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각종 부가 서비스들까지 접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 방송을 비롯한 부가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단순히 선명한 화면을 접하는 것뿐만 아니라 안방문화 자체에 매우 큰 변화가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 시청자는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TV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착용한 장
신구가 마음에 들 경우 TV의 한쪽 코너에 표시돼 있는 아이콘을 클릭해 그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품을 사고 싶으면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품을 그 자리에서 즉시 구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 NBC의 「Saturday Night Live」에서는 클래식 연주방송을 보다가 비디오를 주
문한다거나 초대손님을 소개하는 기능 등을 선보이고 있다. 골프 프로그램에서는 경기 참여 선수들의 대진표나 코스구조 등을 상세히 제공한다.
이러한 기능들은 모두 TV와 세트톱박스의 지능화로 실현된 것이다.
지난 5월 영국에서 개최된 미디어캐스트 2000 행사에서 「당신의 TV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중심화두로 부각됐듯이 이제 TV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도구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다.
TV는 인터넷 검색과 홈쇼핑, 홈뱅킹, VOD 서비스 등까지 담당하는 똑똑한 매체로 진화하고 있다.
초창기의 TV가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에서 출발했다면 앞으로 TV는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을 넘어 머지않아 시청자를 일대일로 상대하는 포인트캐스팅(pointcasting)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포인트캐스팅의 단계에서는 향상된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반아래 양방향(대화형)
서비스가 상용화되고 인공지능 기능이 지원되며 TV와 PC를 결합한 형태의 서비스가 출현할 전망이다.
더 장기적으로는 콘텐츠의 제작기법 발전과 더불어 시청자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는 서비스도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인터넷의 기능이 TV에서 실현되는 인터넷TV는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이와 반대로 PC가 TV의 기능까지 겸비하기도 한다. 기존 PC에 TV수신카드를 꽂아 이러한 기능을 실현시켰던 인텔 등 컴퓨터 회사들은 아예 주기판에 TV기능을 포함시키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처럼 PC와 TV가 일체형으로 좀 더 보편화되면 거실에는 대형 HDTV가 있어도 각자의 방에서 개인 PC를 통해 TV를 시청함으로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점점 더 적어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들이 디지털 방송의 깨끗한 화질을 만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디지털 시험방송에 들어가 별도 채널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으
나 이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만원을 상회하는 고가의 HDTV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수요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이유는 시청자들이 HDTV를 구입한다고 해도 각 방송사들의 장비현황이나 제작여건상 당분간 다수의 프로그램이나 실질적인 부가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디지털 방송의 본격화로 제작환경을 변화시켜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아날로그 방송보다 몇배는 선명한 화면 탓에 땀구멍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배우들의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하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송·송출시설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에야 디지털 방송이 가져온 TV문화의 대변혁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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