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진의 독서산책>老子속에 老子가 없다

김용옥 저 「노자와 21세기」

출판사들이 마케팅에 능하다는 것은 그리 새삼스런 얘기가 못된다. 신문광고를 통한 물량 전략은 기본이다. 그런데 요즘은 신간소개를 신문기사로 내보내지 못하는 출판사는 마케팅 운운하는 축에도 못낀다고 한다.

독자들은 아무래도 출판사가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광고보다는 신문기사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개의 책 소개기사는 출판사측에서 내주는 보도자료의 범주에서 처리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면이 넘쳐나는 신문도 한몫을 거들고 있기는 하다. 요즘 출판사들의 마케팅전략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넘쳐나는 책 광고며 기사때문에 갈수록 책 고르기가 어려워졌다고 하소연이다. 신문을 보고 구입한 책은 저자의 신변잡기 수준이고 유명 저자의 이름에 현혹돼 산 책은 오역과 날림 번역이 많아 읽기조차 불편하다는 것이다. 한 독자는 신문기사는 읽되, 거기에 현혹되지 않고 시간을 기다린다며 최근의 고민을 담은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불과 몇달만 지나면 옥석이 가려지게 되는데 그때가서 읽을 책을 선택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출판 마케팅전략이 엄청난 효과를 본 책 가운데 하나가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다. 성격이 다르다 함은 출판사측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마케팅전략을 구사했다는 얘기다. 잘알려져 있다시피 이 책은 저자가 교육방송에서 장장 52주 동안 방송된 「밀레니엄고전 특강 노자와 21세기」 프로그램의 원고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TV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직접 손에 들고 강의를 했다.

필자가 노자(老子)를 처음 대한 것은 대학시절 장기근의 「노자」와 박이문의 「노장사상」을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TV를 통해서나마 노자를 다시 대한 것은 근 20년만의 일인 셈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신비스럽고(자연스럽고) 그윽하던 노자는 없고 동서양 철학과 신학 그리고 생물학과 한의학에까지 두루 다박한 김용옥의 말솜씨와 탁월한 논법만이 번뜩거렸다.

「노자와 21세기」를 직접 구입한 것은 강의가 끝나고 몇달뒤 우연히 서점에 들렀던 것이 계기가 됐다. 필자는 여전히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는 「노자와 21세기」를 발견하고는 두말없이 상하권 두권 모두를 구입했다. 상권을 그날 저녁 단숨에 읽었다. (노자의 절반가량을 하루저녁에 읽었다!!)

노자와 별로 관계없이 곳곳에 등장하는 유아독존식 독설은 감칠맛이 있고, 해박한 지식에서 비롯됐을 법한 「자신감」 논법은 분명 남들과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칸트·니체·러셀·고갱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에서부터 함석헌·문익환·이광수·심훈, 게다가 유승준(대중가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난해한 인물들도 별 부담없이 등장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한 한글번역이 살아있는 예술의 감동을 무시하고 있다며 해당된 한 구절을 『김용옥식』으로 번역해 놓는가 하면, 부인과 함께 시드니에서 엄청나게 큰 바닷가재를 먹었던 얘기, 누구는 존경스러운데 누구는 존경할 가치가 없다든가 하는 신변잡기 수준의 얘기도 부지기수로 등장한다. 서문은 어떻게 해서 교육방송에 나가 노자강의를 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장광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뿐, TV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와 21세기」에서도 노자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왜 노자해설서에 노자가 보이질 않을까? 「노자와 21세기」 하권 맨 끝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아니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자는 빛나지 아니하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만하는 자는 으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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