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프라이스제 시행 1년>상-프롤로그

다음달 1일이면 TV·세탁기·유무선전화기·VTR·오디오 등 5개 가전품목에 대한 오픈프라이스제(판매가격표시제)가 도입된 지 만 1년이 된다. 그러나 소비자의 구매권리를 보호하고 제조업체의 유통가격 통제에 의한 불공정거래 행위와 유통업체의 폭리를 막아보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 상가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특히 오는 10월 1일부터는 냉장고·에어컨·전자수첩·카세트·캠코더·전기면도기·카메라 등 7개 품목이 새로 오픈프라이스 대상품목에 추가될 예정으로 있어 이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오픈프라이스제 시행 1년을 맞아 현황과 문제점·전망 등을 집중 점검해 본다. 편집자

용산 전자상가에서 17년째 삼성전자 대리점을 운영중인 D모씨는 오픈프라이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부족으로 잦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 속이 터지는 심정이다.

『오픈프라이스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는 소비자는 10명 중 3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박리다매 형태로 TV의 판매가격을 표시해 놓아도 소비자는 권장소비자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보곤 으레 깍아 달라고 합니다.』

또 송파구 풍납동에 거주하는 주부 P모씨는 오픈프라이스제가 도입된 이후 어떤 제품이 어느 매장에서 보다 싼지를 알기 위해 다리품을 파는 것이 몹시 번거롭다.

『오픈프라이스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주변의 매장을 찾아가 권장소비자가격을 물어보곤 얼마나 할인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기준가(권장소비자가)가 사라지니 제시하는 가격이 정말 싼지 판단이 서질 않을 뿐더러 괜히 속는 기분이 들어 보다 싼 매장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오픈프라이스제가 지난해 9월 1일 도입된 이후 소비자와 상인간에 유통가격의 실체를 놓고 이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연출되고 있다. 상인은 소비자의 인식부족과 선입관을 탓하고 소비자는 상인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유통업체간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상품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할 때 매장을 찾아가 판매가격을 비교·확인하면 알뜰쇼핑이 가능한 오픈프라이스제가 시행 1년이 지나도록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J대리점 관계자는 『매장에 진열된 가전제품에 권장소비자가를 표시하거나 할인가격을 표시하는 대리점들이 아직까지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오픈프라이스제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다.

실제 소비자보호원이 지난 3월 백화점·할인점·가전전문점 등 유통가를 대상으로 오픈프라이스제의 이행여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폐지된 권장소비자가를 표시해 판매하고 있는 매장은 조사대상의 34.1%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오픈프라이스제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유통업계에서는 크게 세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비정상적인 거래를 통한 덤핑제품의 유통이다. 둘째 소비자와 상인간의 신뢰기반이 취약하며 끝으로 브랜드가 명목상 유통가격의 문란을 막는다면서, 「지도가격(일정가격 이하로 판매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D대리점 관계자는 『소비자와 상인간에 신뢰감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상거래를 통한 제품만이 유통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점과 인터넷쇼핑몰이 사채업자 등과 연계, 「덤핑물건」을 유통시키는 바람에 시장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며 『이를 철저하게 근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덤핑물건이 버젓이 유통가(온라인·오프라인)를 돌아다니고, 이를 구입한 일부 상인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활용함으로써 이같은 왜곡된 가격이 소비자에게 마치 정상적인 가격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반 상인이 매장에 적정 판매가격을 표시하면 소비자가 이를 무조건 깍자고 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애초부터 권장소비자가 할인율 등을 부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LG전자 A대리점 관계자는 『브랜드가 유통업체간의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일정 가격 이하로 판매하지 않도록 하는 판매가격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어 자율적으로 판매가격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혀 오픈프라이스제의 기본원칙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통구조가 이렇다 보니 혼란스러운 것은 소비자들이다. 어느 상점에 가야 상인의 상술에 속지 않고 적정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지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가 가격경쟁을 유도해 가장 적정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오픈프라이스제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오픈프라이스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와 상인(온라인·오프라인)간 상거래에 대한 신뢰회복과 브랜드의 노력, 여기에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지속적인 계도와 감시활동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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