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8회-만들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세트업체들이 요구하는 사양대로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마케팅이 필요합니까. 싼 가격에 빨리 공급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내 부품업체들의 마케팅에 대한 인식과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한 부품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국내 굴지의 그룹인 LG그룹의 자회사로 올해초부터 부품사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LG전선의 경우 70명으로 이뤄진 커넥터팀 중 마케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력은 고작 제품기획 담당자 1명뿐. 대기업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중소 부품업체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 마케팅 전담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열에 아홉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부품업체들의 경우는 마케팅이 정말로 필요없는 것일까.

『국내 부품업체들의 경우 마케팅력이 딸리다보니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신뢰성이 검증된 선진국 제품이나 그대로 따라 베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LG전선 부품사업부의 사업기획 담당인 김준일 과장은 국내 부품업체들이 선진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마케팅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

조한다.

특히 범용제품의 경우 기술력보다는 마케팅력에 의해 시장이 좌우되기 때문에 마

케팅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마케팅력이 없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LG전선은 지난 96년 미국의 벤처기업인 판다프로젝트사와 제휴, 60억원을 투자

해 세계에서 최초로 하나의 기둥에 4개의 핀을 배치할 수 있도록 한 컴퍼스(Compass) 커넥터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제품은 동일한 면적에 더 많은 핀을 배치할 수 있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품이었지만 결국 시장 진입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이 제품이 당시 세트업체들의 요구와 기술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너무 앞서갔기 때문이다.

수정디바이스업체인 KQT는 이와는 반대로 적절한 타깃시장을 정하고 적기에 제품을 개발해 성공한 케이스.

이 회사는 다른 수정업체들이 일반 수정진동자에만 매달리고 있는 동안 전압제어수정발진기(VCXO) 등과 같은 고부가 아이템 개발에 주력해 최근 미국의 벡트론사·지멘스사 등에 5000만달러 어치의 VCXO를 수출하게 됐다.

다른 경쟁업체들과 같이 당장 수요가 있는 제품에 매달리지 않고 직접 수요를 찾

아다닌 결과다.

이 회사의 조명준 전무는 『일반 수정진동자의 경쟁력이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VCXO분야만큼은 자체 IC 설계기술 등을 확보하고 있어 국내 최고』라며 『올해 500억∼600억원의 매출로 선두 수정업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마케팅 전담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당장 영업인력

도 딸리는 판에 마케팅 담당자를 구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용이 늘고 있는 인터넷은 이같은 부품업체들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부품 포털사이트인 엘레파츠닷컴의 최민석 사장은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이 없는 인터넷을 활용하면 적은 인력과 비용으로도 전세계에 회사를 홍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품별 홈페이지를 개설한 LG전선의 김준일 과장도 『현재 여력으로 세계 각지의 바이어들을 직접 찾아다닐 수는 없는 형편』이라며 『부품별 홈페이지 개설은 마케팅 강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국내 부품업체들도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춘 업체들은 대부분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홈페이지는 구색 갖추기용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한달에 한번도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는 홈페이지가 허다하며 심지어는 개설한

이후 바뀐 것이라고는 게시판에 게시물 몇건이 올라간 것이 전부인 홈페이지도 적지 않다.

최민석 사장은 홈페이지를 마케팅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방문객들이 또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홈페이지를 제대로 운영할 여력이 없는 소규모 기업이라면 파츠엔닷컴(http://www.partsN.com), 엘레파츠닷컴(http://www.eleparts.com), 칩114(http://www.chip114.com) 등과 같이 최근 들어 잇따라 개설되고 있는 전자부품 전문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도 아쉬우나마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급급한 국내 부품업체들이 선진국의 대형 부품업체들과 직접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못지 않게 마케팅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 박경철 책임연구원 parkkc@nuri.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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