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품.소재산업 르네상스를 위하여>7회-연구소 인력난과 연구개발 부재

경기 안양시 관양동에 자리잡은 이동통신 부품 제조업체인 창원전자. 50여평 규모의 사무실 겸 연구실에는 20여명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요즘 이동통신 시장 호황으로 부품업계에서는 연구개발·생산 엔지니어 같은 고급 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듭니다. 설상가상으로 벤처붐을 타고 몇 년 동안 가르쳐 놓은 엔지니어들은 타 정보통신 벤처기업으로 옮기기 바쁩니다. 대기업들이 외부 핵심인력 1명을 영입해오는 직원에게 100만∼200만원씩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까지 5년 안팎의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중소 부품업체들은 엔지니어들을 확보하는 데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창원전자의 안창엽 사장이 털어놓는 얘기는 전자부품·소재업계가 겪고 있는 인력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전국 600여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응답업체의 75%가 인력난을 호소했다.

안양시 호계동에 소재한 통신용 부품 제조업체인 알에프코리아의 박근서 사장은 『제품의 기능과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고급 엔지니어들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이 분야 연구개발 작업이 어렵고 힘들다는 인식 때문에 엔지니어들이 근무를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군포역 근처 신라테크노타운에 있는 레이저테크의 조형석 사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연구개발 현장에 바로 투입할 고급 엔지니어도 적고 연구현장에서 꾸준히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정보통신·인터넷분야 벤처열풍 영향으로 부품·소재 제조업계의 엔지니어들이 정보통신 벤처기업으로 떠나면서 부품·소재업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각 연구소의 기술을 좌우하는 필수 엔지니어들마저 벤처기업가로의 변신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전자통신용 부품을 만드는 K사에서는 올들어 5명의 엔지니어들이 타 벤처기업으로 떠났다. 이 회사 W사장은 『중소기업에서 엔지니어 5명은 큰 규모입니다. 그만큼 타격이 큽니다. 최근 정보기술(IT) 벤처에 대한 투자가 얼어붙으면서 잠시 엔지니어들의 벤처행 러시가 멈칫했지만 언제 또 몰아칠지 걱정』이라면서 엔지니어를 잡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경기 시화공단에 있는 소재 생산업체인 A사도 엔지니어 3명이 정보통신 벤처기업행에 몸을 실었다.

부품소재 분야 대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인 L그룹의 광소재를 만드는 한 계열사의 부설 연구소에서는 올 초부터 매주 평균 2명 이상의 연구원들이 벤처기업으로 옮기거나 창업에 나서는 등 불과 몇 달만에 수십명의 엔지니어들이 빠져나갔다.

이런 현상에 대해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엔지니어들은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를 내놓고 있다.

전자부품연구원의 연구개발본부장으로 재직하다 상반기에 벤처 창업을 한 김한식 소프트픽셀 사장은 『연구기관과 대학의 기술개발능력이 산업현장과 효과적으로 접목돼야 하며, 간접적인 접목보다는 직접적인 기여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창업을 결심했다』고 벤처행 동기를 밝혔다.

알에프코리아에서 RF부품 개발 5년 경력을 가진 김옥진 연구원은 『동종 부품업체의 연구소에 근무하던 친구들이 지난해부터 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으로 옮겨갔다』며 『그들 대부분은 젊었을 때에 새로운 것을 더 습득하면서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에서 자리를 옮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급 연구개발 인력을 확보하는 데는 수도권이나 지방소재 부품·소재업체들의 사정이 더욱 어렵다. 지방업체들은 고급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가지 인센티브를 내세우고 있지만 단지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엔지니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셀라이트의 김봉철 이사는 『최근 여러 좋은 조건을 내세워 소프트웨어 부문 경력 엔지니어 확보에 나섰지만 수원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지원을 꺼리고 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천안 2공단에 있는 D사 고객서비스팀의 김 팀장도 『연구개발·생산 경험이 있는 엔지니어들이 절대 필요한데 구하기가 힘들다』면서 『그 대신에 신입들로 메우고 있지만 제품의 신뢰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엔지니어들이 하나둘 타 벤처기업으로 빠져나가는데다 스카우트 경쟁으로 고급 인력을 구하는 것마저 어려워지다보니 부품·소재 업체들의 연구개발력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

창원전자의 안창엽 사장은 『고급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부족한 부품업체들은 설계한 제품을 구현·양산하는 것은 물론 차후 기술개발을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엔지니어층이 두텁지 않은 업체들의 경우 얼마 못가 문을 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송탄공단에서 전자부품을 만드는 K사의 한 관계자는 『젊은이들은 근무여건이 나쁘다며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나마 내부 엔지니어들도 얼마 안가 이탈한다』며 인력수급이 들쭉날쭉해 제품의 생산·개발 계획을 짜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부품·소재업계의 엔지니어 부족현상은 국산 전자부품·소재의 경쟁력을 키우고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엔지니어들에 대한 실질적인 인센티브제도의 강화, 실험실 창업개념의 재정립, 연구인력의 순환과 보상책 등 중단기 인력운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생산설비의 재구축은 비교적 쉽지만 연구개발 인력기반이 무너지고 나면 그동안 구축해 놓은 지적자산 등이 일거에 증발한다』면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부품·소재기술의 대외종속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황해웅 한국기계연구원장은 『국내 업체들이 개발하는 전자부품들이 세계시장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성능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예컨대 시험설비 못지않게 시험인력과 시험결과를 분석하는 데에는 고급 인력이 필수적』이라며 고급 전문인력을 국가가 투자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전자부품연구원 김남현 전임연구원 kimnh@nuri.ke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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