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태풍이 올라온다던 지난 12일, 서울에서 한시간 넘게 달려 중부고속도로 일죽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왼쪽으로 방향을 트니 장호원읍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곳에는 시커먼 구름이 뒤덮여 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읍 끄트머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의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다.
전형적인 농촌인 이곳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13층짜리 고층 아파트 한 동이 우두커니 서 있다. 동부아파트다.
이 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와 다르다. 반도체사업을 재개한 동부전자의 사무실 겸 직원 숙소다. 1층 상가용 공간은 사무실로, 윗층부터는 잠자리로 쓴다.
『올 가을 공장 사무동을 완공하면 이 아파트는 직원들의 기숙사로 바꿉니다. 모두 131세대인데 기숙사로 충분합니다.』
유호정 동부전자 관리부장의 설명이다. 서울 강북에 집을 둔 유 부장도 몇 달째 이 곳에 사는 주말부부다.
동부전자 음성공장은 이 아파트에서 차로 5분 남짓한 거리의 상우리에 있다. 국도에서 왼쪽으로 좁은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건설현장인데도 정문 경비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경비가 삼엄하기로 소문난 기존 반도체공장의 출입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씩 내리던 빗줄기는 곧 장대비로 바뀐다. 마치 오랜 시련 끝에 반도체사업을 재개한 동부전자의 앞날이 그다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동부는 이달초 사업진출을 공식 선언하자마자 국내외 반도체업체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동부쪽으로 인력유출을 막기 위해 단도리에 나섰다. 잠재 경쟁자의 출현이 달갑지 않은 대만의 파운드리업체들도 벌써부터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정문을 지나치니 큰 건물 세 채가 눈앞에 나온다. 왼쪽 건물은 사무동이고 오른쪽 건물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물질·전력 등을 공급하는 지원동이다.
한 가운데 건물이 바로 반도체 생산공장이다. 120×112m 넓이에 3층짜리 건물이다. 밖에서 보면 몇 층짜리인지 알 수 없다. 뒤편에는 폐기물처리장·배전시설 등을 건설중이다.
조진영 건설기획실 과장은 『97년 건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공장이었다』고 말했다. 설계 역시 인텔·모토로라 등의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맡았던 미국의 모 전문 설계업체가 맡았다.
당시 동부그룹이 반도체사업에 얼마나 강한 의욕을 가졌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원동 오른쪽에는 세 채의 가건물이 있다. 일부는 사무실로 쓰지만 대부분 건설 인력들이 사용한다.
이달초 현재 공정률은 49.8%. 3·4분기 안으로 준공이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조 과장은 『50%를 넘으면 공정률이 매달 10% 이상 뛰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이 전반적으로 호황이어서 동부는 최대한 공장준공과 양산시점을 앞당길 방침이다.
도시바와의 협상 지연으로 일정이 늦어진 상태여서 동부의 조급함은 현장 곳곳에 나붙은 조기 완공 슬로건에서 배어나온다.
브리핑실에는 건설현장을 둘러본 모 은행의 관계자들이 들어섰다. 동부전자는 지난 3일 반도체사업 진출을 발표하면서 그룹내 다른 계열사로부터의 출자나 지원을 받지 않고 해외 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금융권과도 활발히 접촉하는 모양이다.
비는 곧 그쳤다. 반도체 생산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층은 용수시설과 스크러버 등을, 2층은 배기덕트와 보조장비 등이 들어서는 보조공장이다. 3층은 클린룸을 비롯해 본격적인 웨이퍼 생산과 검사 장비들을 놓을 자리다.
올라갈수록 깔끔하다. 용역나온 아주머니들이 쉬지 않고 바닥을 쓸고 닦는다. 먼지와의 싸움인 반도체사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먼지는 장비가 들어서기 전에만 치우면 되는 게 아닌가』고 물었더니 동부건설의 관계자는 『먼지는 아무리 치워도 남기 마련이어서 처음 단계부터 먼지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부전자는 공장의 반쪽에만 라인을 구축중이다. 나머지 반은 내년 상반기중 새로 구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요 상황에 맞게 라인을 늘려가기 위해서다.
반도체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풍부한 물과 청정한 공기, 풍부한 전력 등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이에 대해 동부전자는 18㎞ 떨어진 남한강 물을 끌어들이는 배관공사가 95% 정도 진행됐으며 감곡 변전소와 4㎞간에 걸쳐 철탑을 13개 세우는 공사도 이미 완료해 9월부터 본격적인 용수·전력 공급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동부측은 이 지역의 공기가 맑고 깨끗해 먼지가 적으며 국내 지진분포상으로 지진 가능성이 가장 낮은 곳이라고 밝혔다. 공장은 7도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동부는 애초 D램 반도체사업에 진출하려 했다. 이번에 비메모리 분야의 파운드리사업으로 돌아서 공장 설계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에 대해 동부측은 『아주 미세하게는 설계를 바꿔야 하나 구조 자체는 동일해 큰 문제는 없으며 메모리 라인에 비해 단순한 편』이라고 밝혔다.
동부만큼 사업재개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음성군민들이다.
음성공장 앞 구멍가게인 「하나슈퍼」를 운영하는 조영복씨(31)는 『얼마 전부터 매상이 70%나 늘었다』며 『공장이 완공되면 우리집 매상도 늘어나고 길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음성군 역시 첨단 산업의 유치에 기대가 크다. 군청 공업경제과의 이기춘 계장은 『고용창출과 인구유입으로 지역경기가 크게 살아나 인근 이천시만큼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동부는 음성공장을 내년 4월초에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빠듯한 일정이나 동부가 앞으로 8개월 동안 제대로 준비하면 음성군이라고 하면 「고추」 대신 「반도체」를 떠올릴 것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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