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여름 오마에 겐이치 미 UCLA대 교수는 『한국 경제는 미국과 일본에 종속된 구조로,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한국을 들쑤셔놓았다.
오마에 교수가 꼽은 이유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부품산업의 취약성이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부품 제조는 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반도체와 휴대폰 등을 생산하는 데 급급해 가장 중요한 부품산업을 방치한다』면서 『이대로 가면 한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 경쟁해 이길 수 없다』고 질타했다.
국내 전자산업을 들여다보면 그는 독설이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니다.
반도체와 함께 양대 수출 효자품목으로 떠오른 휴대폰을 뜯어보자. 메모리·LCD 등 일부 부품을 제외하고 배터리에서부터 음향부품까지 절반 이상이 외산이다.
휴대폰뿐만 아니다. 1500개 부품이 들어가는 고성능PC도 CPU를 비롯해 동영상 보드까지 부품의 절반 이상이 수입품이며, DVD플레이어나 산업용 로봇의 수입 의존도는 70∼80%에 이른다.
이들 제품은 대체로 수출이 활발하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핵심부품의 수입도 덩달아 늘어나게 돼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수입에서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5년 6.7%에서 99년 13.6%로 치솟아 해마다 부품 수입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소재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45% 정도로 껑충 뛴다.
이는 CPU·핵심칩·2차전지 등과 같이 국내 조달이 어려운 핵심부품의 수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내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만 해도 지난해 160억달러 어치를 수입해 원유를 제치고 수입 1위에 올랐다. 그것도 수입량이 수출량보다 매우 적은데도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 수입하는 반도체 제품이 수출하는 반도체 제품에 비해 부가가치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밖에서 남고 안에서 밑지는 국내 전자부품 수출입 구조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10대 수출품목이 10대 수입품목과 거의 일치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표참조
이 또한 주력 수출품목에 필요한 핵심부품과 부분품을 대부분 외산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가능케 한다.
더욱 큰 문제는 수출이 특정품목에 집중된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10대 품목이 차지하는 비율은 93.4%에 이르는데 이는 98년에 비해 0.7%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부품산업의 고른 발전을 꾀하는 정책방향과 크게 어긋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어차피 모든 품목을 국산화할 수 없다면 전략품목에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주요 수출품목은 대부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대기업 품목이다.
대형 부품업체와 중소 부품업체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전자업체와 부품업체는 국내 중소 부품업체들과 수직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중소 부품업체들이 무너지면 그 부메랑은 결국 대기업들이 맞게 돼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들은 최근 원가절감을 위해 협력 부품업체들에 대한 공급가 인하를 유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오랜 거래관계를 청산하고 부품 조달처를 동남아지역으로 바꾸기까지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도 시원찮은 판에 오히려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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