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은 과연 몇 장의 티켓이 배정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표준의 향배다.
장비업계의 입장에서 보면 경쟁력의 지렛대가 되지만 사업자들의 경우 「생사」가 걸린 문제다.
◇표준 선택의 의미=한국통신그룹, LG그룹, SK텔레콤, 한국IMT2000의 4강이 경합하는 사업자 수는 3개가 되건 4개가 되건 내달 6일 최종 확정되겠지만 기술표준은 아직 미완성의 대목으로 남아 있다.
한때 정부가 최대한 늦추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여론에 밀려 내달 6일 사업자 선정기준과 함께 결정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정부는 기술 표준에 관한 한 과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와 같이 국가 단일 표준으로 가지 않고 사업자들이 스스로 표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표준은 정부, 사업자, 장비업계가 서로 치열한 눈치 작전속에서 최종 입장을 정리할 것이다.
특히 한통, LG, SK 등 사업자로 선정될 것을 자신하고 있는 3강은 사업자 선정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장기 포석을 깔고 기술표준에 접근하고 잇다.
이들은 어떤 기술 표준을 선택하느냐가 초기 IMT2000시장 선점과 직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즉 기술표준이 사업자별로 선정되고 만약 동기와 비동기 복수 표준이 등장한다면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면밀히 따지고 있으며 손익 계산이 끝나야만 자사의 입장을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간 기술표준 논란은 겉으로는 국가 경쟁력이라는 당위성을 들먹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 이동전화시장에서의 SK 독주 아성을 IMT2000에서는 한번 깨보자는 후발주자들의 전략이 숨어 있다.
SK 역시 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이동전화시장 기득권을 IMT2000에서도 유지하는데 기술표준 선택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동기식을 추진하겠다던 SK텔레콤은 최근 사업자 자율로 선택하는 방식이 허용된다면 비동기로 가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속이 타는 것은 한국통신과 LG, 한국IMT2000이다. 이들은 IMT2000시장에서도 SK텔레콤과 똑같은 기술표준(예컨대 동기 혹은 비동기)으로 승부할 경우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다. 현 2세대 이동전화시자의 재방송이 상영될 것이라고 본다. 이미 개인휴대통신(PCS)시장에서 검증된 사례다.
후발주자인 이들은 SK텔레콤과 대등하게 경쟁하거나 적어도 불리하지 않은 상태로 IMT2000시장에 뛰어들려면 차별화가 절실하고 그 첫걸음이 SK텔레콤과는 다른 표준을 들고 나오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간 SK텔레콤이 동기로 간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들은 비동기를 선택, 해외 등으로 눈을 돌려 장점을 극대화한다면 한판 승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SK텔레콤의 비동기 선회 움직임으로 갑갑해 하고 있다.
아무튼 기술표준은 SK텔레콤은 기득권 방어를 위해, 나머지 주자들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SK와는 다른 길을 가야한다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했다.
어떤 경우든 SK텔레콤이 기술표준은 물론 향후 시장 구도를 결정짓게 할 열쇠를 갖고 있는 꼴이다. SK는 칼집을 후발주자들은 칼날을 잡고 있는 셈이다.
◇SK-동기, 후발-비동기 경우=얼마전까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던 안이었다. SK는 정부통신부의 입장을 고려, 동기식에 무게를 두겠다고 설명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CDMA시장의 연속성을 위해 동기식 단일표준을 내심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 깔려 있었다.
SK로서는 정부의 의도를 앞장서 실현해 동기 대세론을 일으킨다면 사실상 동기 단일화로 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기왕 동기 단일표준이 된다면 SK가 깃발을 드는 것은 여러모로 보나 모양새가 좋다. 한국통신은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결국은 정부 의지대로 동기식을 선택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LG 역시 동기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 뒷받침되었다. SK와 한통 2강이 동기인데 LG만 비동기를 고집하는 것은 거의 자해행위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은 SK의 동기 선호 움직임을 보고 자신들은 비동기로 가야한다고 밝혔다. 한통, LG, 한국IMT2000이 여기에 속한다. SK와의 차별화와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 구도는 SK텔레콤의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후발주자들의 도전 여지를 열어 주는 이상적인 그림으로 평가됐다. 그래서 굳이 사업자별 득실을 따지자면 SK가 보합 내지는 마이너스, 후발주자들은 플러스 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정부가 이달 중순 국회 보고를 통해 사업자 자율 선택에 맡기겠다고 밝힌 것이다. 기존 구도가 헝클어질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SK, 한통-동기, LG-비동기 경우=SK텔레콤이 세계 최고 CDMA기업이라는 성가를 유지하고 한국통신은 정부의 의지대로 동기식을 선택하는 그림이다. LG와 한국IMT2000은 여전히 비동기를 유지한다. 시나리오상으로는 예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LG가 홀로 비동기를 고집(비록 한국IMT2000과 연계가 가능해도)해 이 시장에서 SK와 한통을 상대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 역학구도상 배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SK, LG-비동기, 한통-동기 경우=약간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사업자 이해관계에선 당연히 비동기를 선호하지만 한통은 정부의 의사를 존중, 동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통 혼자 IMT2000시장에서 「왕따」를 당할 공산이 크다. 한통이 아무리 최대 기간통신사업자라 해도 비동기 거대 민간기업들의 협공에 동기 단일로 버티기는 어렵다. 한통으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구도가 될 것이다.
◇동기 단일 경우=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사업자들이 모두 비동기 선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웬 말이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동기 단일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너무 많다.
우선 한통이 동기를 선택하면 SK는 주판을 퉁기게 된다. 시장 지배력 유지가 관건인 SK로서는 명분(정부 의지 뒷받침)도 살리고 시장 구도를 IMT에서도 이어갈 수 잇다는 점에서 한통에 맞불작전으로 나올 수 있다. 그리되면 LG로서도 동기를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안은 정부로서도 「해피」하다. 사업자 자율에 맡겼으니 책임질 일도 없고 동기식을 강권하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여지도 없어 진다. CDMA 종주국으로서의 명성도 유지된다.
◇비동기 단일 경우=자율선택이라면 당연히 비동기 단일로 갈 것 같아 표면적으로는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오히려 실현 불가능으로 봐야 한다.
비동기 단일일 경우 우리 정부와 업계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우선 미국의 통상압력이 거셀 것이다. 가뜩이나 세계시장의 90% 정도를 유럽식에 내주고 있는 판에 유일하게 믿고 있던 한국이 비동기로 선회하는 것을 두고 볼 미국이 아니다.
또 한국장비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중국 CDMA시장 공략도 어려워 진다. 한국이 비동기식을 서비스하는 판에 중국에 CDMA시장을 열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퀄컴의 로열티 보복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을 숙주로 해서 성장한 퀄컴은 지금도 고압적 자세다. 어차피 비동기부문에도 퀄컴의 특허가 포함되어 있으니 컬컴이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데서 그치지 않은 채 로열티 「횡포」의 수위를 한층 높일 가능성도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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