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분명한 IMT2000 기술표준

이제는 집권여당의 초선 의원이 된 남궁석씨가 정보통신부 장관이던 시절 소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의 영웅들」을 초청, 밥을 산 적이 있었다. 서정욱 과기부 장관, 정장호 정보통신진흥협회장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라성 같은 정보통신업계의 거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음은 물론이다.

그 자리에 참석한 본인들이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정보통신 업계 관계자들이나 일반 국민들조차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불러도 조금도 손색없는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배 만들 공장 하나 없이 외국에 달려가서 배부터 수주하고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배까지 건조한 정주영씨가 「현대 신화」를 탄생시킨 것처럼 그들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CDMA에 「목숨」을 걸었고 연구와 비즈니스에 몰두한 결과 오늘의 CDMA 최강국 한국을 만들어 냈다.

당시 LG정보통신 사장이었던 정장호씨는 『죽기 살기로 CDMA 개발에 매달렸고 반대하던 사람들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설득했다』고 「경영자의 길」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 그들이 지금도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고 존경받는 이유는 말그대로 CDMA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디지털 이동전화 기술표준 논쟁이 CDMA의 완승으로 결말났고 이 때부터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 기술표준을 CDMA 단일로 결정했기 때문에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동전화시장에서 발붙일 곳을 잃는다는 절박감이 누구보다도 컸다. 거의 「도박」이나 다음 없었던 단일 표준 결정은 정부가 내렸지만 그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한국은 기술 고립은 물론 통신분야에서 영원한 후진국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기여코 해냈고 영웅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했다.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을 앞두고 국가 기술표준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부와 업계, 학계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분분하다.

정부는 얼마전까지 기술표준은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직결되고 로열티라는 민감한 사안이 얽혀 있는 만큼 가급적 결정시기를 미루겠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심지어 사업자가 선정되는 올 연말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정통부는 6일 사업자 선정과 관련된 모든 기준을 단일안으로 확정하고 여기에는 기술표준도 포함된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는 진일보한 것이다. 정부 정책이란 여론의 흐름을 타야 한다고 볼 때 업계의 대다수가 사업권 신청 이전, 즉 9월 전에 국가 기술표준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본지가 최근 국내 주요 정보통신업체 최고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 조사에서도 「9월 이전 결정」이 과반수를 훨씬 넘었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IMT2000 기술표준에 접근하는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CDMA 도입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업계 자율 선택에 맡기기로 내부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표준을 정부가 결정하지 않고 사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현 여건상 동기와 비동기 복수 표준으로 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IMT2000을 준비중인 사업자들은 자율 선택일 경우 비동기를 선호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론적 의미일 뿐이다. 정작 사업권 신청시에는 동기식을 채택하는 사업자가 나올 것이라는 게 업계나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문제는 사업자는 물론 언론조차도 「업계 자율 선택」이라는 정부의 방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비록 업계 자율에 맡긴다고 해도 만약 비동기 단일로 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부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적당한 「개입」을 통해 동기 표준을 사용하는 사업자를 만들어 낼 것으로 믿고 있다.

6일 확정되는 정부안은 분명해야 한다. 정부의 판단이 「업계 자율」이면 이후 어떤 상황이 초래돼도 이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대 국민 약속이기 때문이다. 정부안이 동기 또는 비동기 단일안이면 이 역시 관철해야 하고 한개의 동기 사업자에 두개의 비동기 사업자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이를 솔직하게 발표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IMT2000사업자 선정의 핵심은 투명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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