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IMT2000 사업자 선정

박재성 정보통신부장 jspark@etnews.co.kr

 『국제통신연합(ITU)은 회원국이 가격경쟁방식을 통해 주파수를 배분할 경우 그 매각대금을 유무선통신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10월 중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텔레콤 99」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안병엽 정보통신부 차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그의 말을 쉽게 풀어보면 한국정부는 주파수 경매제를 통해 IMT2000서비스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그는 한국이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할테니까 ITU가 도와달라는 뜻을 담았다.

 참으로 함축적이고 정치적인 발언이다. 주파수 경매제 실시는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적지않은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선진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시장원리에 부응하고 명분도 잘 갖춘 것으로 비쳤다. 안 차관의 발언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벌써 한달여가 지나 뜨거웠던 텔레콤 99의 열기도 식은 지금 그 일을 다시 거론한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일을 들추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IMT2000사업자 선정 일정을 밝힌 바 있다. 2000년 6월에 IMT2000사업자 수와 선정방식을 결정하고 2000년 9월 사업허가 신청을 받아 12월 사업자를 선정하며 서비스는 2002년 5월부터 실시하기로 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정부는 사업자 선정 일정을 밝히고 「텔레콤 99 발언」이 나올때까지 3개월동안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일정을 밝혔으면 됐지 뭘 더 내놓으라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정부의 태도는 IMT2000사업자 선정이 갖는 중요성이나 산업계에 미치는 엄청난 파급효과로 보아 신중함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그나마도 밝힌 주파수 경매제도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뭐하나 똑부러지는 것이 없이 해를 보내려 하고 있다. 준비도 거의 없이 새해를 맞는다고 해서 벽두부터 뭐가 나올 것 같지도 않다.

 침묵의 근저에는 수년 전 악몽으로 얼룩진 PCS사업자를 비롯한 이동전화사업자 선정의 휴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탓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렇지만 IMT2000에 관해서는 정부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이해 당사자는 물론 온 재계는 분주하기만 하다.

 기간통신서비스사업자를 비롯해 그룹사와 중소 서비스사업자, 장비업체들이 온갖 방법으로 IMT2000에 한발짝 더 다가가려고 안달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이나 대학교수도 「IMT2000」에 선을 대려고 세미나를 여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미국 개척시대 골드러시와 흡사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노력이 어쩌면 상당 부분 헛수고로 끝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상황은 정부가 시험일정만 정한 채 시험과목이나 출제경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는 꼴이다. 수험생들이 방향도 못잡을 것은 뻔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우리나라 전체가 IMT2000에 매달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골드러시에는 「서부」라는 지향하는 방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재계는 IMT2000사업자 선정을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고 있다. 당연히 힘의 낭비요, 기업의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CDMA단말기 생산대국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나라보다도 빨리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도모하는 일이 성공을 거두려면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실기를 하고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일본은 IMT2000에 관한한 우리보다 서비스 일정도 빠르고 사업자 선정시기도 늦지 않다. 우리가 미적미적하는 사이 일본에게 덜미를 잡힐 수도 있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IMT2000사업자 선정과 관련한 세부방침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불필요한 국력 낭비를 막고 또 정보통신분야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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