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장의 목소리는 사무적이면서 냉담했는데, 상당히 불신하는 어조였다.
『배 선배는 고려방적에서 일하면서 간부들과 좀 사귀어 놓지 그랬어요. 이런 문제가 터지면 공식적으로 항의하기 전에 귀띔이라도 하게 말입니다.』
나는 사석에서는 그를 형이라고 부르거나 배 선배라고 불렀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배 과장이라고 불렀으며, 그도 나에게 존칭을 썼다.
『글쎄, 그들과 친해 두는 것과 제품의 클레임은 다르지 않겠어?』
『다르기야 하겠지만, 사전에 이야기를 못 들었어요?』
『오작동이 자주 나서 짜증을 내는 말은 여러번 들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올지는 몰랐지. 어쨌든 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미안하군. 책임을 지고 물러나든지 하지.』
『형, 그런 말은 말아요. 일이 벌어졌는데 빠져 나가면 되는 거요?』
그가 실수로 일을 망쳤다고 해서 그를 배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일의 책임은 배용정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려방적에 납품하는 일은 모두 배용정에게 맡겼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검증하는 일도 맡겼고, 그것을 납품하고 설치하는 일, 그리고 현지의 기능공들에게 교육하는 일도 그에게 일임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지의 사용자들 잘못으로 오작동이 초래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잘못 사용했다고 해도 그들을 교육했던 우리측의 책임이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사용자의 잘못으로 오작동이 초래하지는 않는다. 자동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사용자는 관찰하고 점검하는 것에 불과했다.
배용정은 나에게 미안한지 차안에서 별로 말이 없었다. 우리는 자주 담배를 피웠다. 밖의 날씨는 차지 않았으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 차 유리를 열어놓으면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두 사람이 속이 상해서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나면 차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운전기사 윤학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해 기침을 하였다. 내가 유리를 내려 공기를 정화시켰다. 고속도로 변의 산에는 단풍이 들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올수록 단풍의 색깔이 달랐다. 높은 지역의 나뭇잎이 빨갛게 물들어 있고, 밑으로 내려올수록 아직 푸른 잎이 남아 있었다.
『형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배용정이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어 내가 오히려 그를 위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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