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전선종 원장

　전자정보통신기술 분야 최고의 두뇌들이 몰려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정선종 원장. 지난해 4월 취임 후 그에게 맡겨진 첫번째 임무는 21세기 ETRI 비전을 체계화하는 일이었다. 이 비전을 위해 정 원장은 국내의 어느 연구기관, 어느 민간기업보다도 강도높은 개혁과 체질개선 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가 최근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그를 직접 만나보았다.

　21세기를 두달여 앞둔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ETRI의 비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1000여 두뇌들의 총수답게 분명하게 답했다.

　『최소한 5년 후를 내다볼 수 있는 국가 전략기술연구소로 거듭나겠습니다.』 여느 보통의 연구소 책임자처럼 『세계적인 선진 연구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연구원들의 기술창출 역량을 꾸준하게 배양하겠다』 『그래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먼저 개발해 국력신장에 도움이 되고 21세기 전자정보통신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앞장서겠다』는 식의 정치적 대답을 기대했던 기자는 그만 허를 찔리고 말았다.

　『조금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원장으로 취임하기 1∼2년 전부터 저는 나름대로 ETRI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해왔습니다. 전자정보통신 기술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기관이 되려면 최소한 5년 앞을 내다보는 전략기술 연구소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민간기업과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이같은 비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정 원장이 몇년 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줄곧 주장해온 「대덕밸리」론. ETRI가 있는 대덕연구단지 인근을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벤처기업단지로 육성하고 그 중심에 ETRI를 놓는다는 것이다.

　『25년 전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에 연구단지를 만들 당시의 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벤처기업은 주로 전자정보통신 기술분야에서 쏟아져나오는데 그들이 비빌 큰 언덕이 대덕단지고 그 중심에 ETRI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선종 원장은 국내 전자정보통신 기술분야에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 83년 ETRI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연구소(KETRI)에서 연구원 생활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그가 거친 곳은 하나같이 나중에 논의의 핵심이 된 분야들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위성통신 분야. ETRI 원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ETRI 위성통신기술연구단장을 지냈고 그에 앞서 아·태위성통신회의 초대 및 2대 회장, ETRI 위성통신 개발연구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그가 희망하는 대로 21세기는 위성통신시대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ETRI 원장에 취임한 이후 정 원장이 요즘 가장 불편한 것은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 『생활의 틈이 없기 때문에 너무 건조합니다. 책 읽을 시간조차 없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출장중에 차 속에서 중요한 것을 속독하는 정도입니다.』 그는 연구단지 주위의 계룡산과 대둔산에 오르거나 골프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ETRI 원장을 맡은 지 20개월째인 지난 15일 정선종 원장은 최근 경사스런 소식을 하나 접했다. ETRI가 한국전자산업진흥회와 전자공업협동조합이 공동으로 한국 전자산업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전자산업 발전의 유공기관 중 하나로 뽑힌 것.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속에 연구원들이 연구개발에 힘쓰고, 역대 원장들이 쌓아놓은 업적을 인정받아 유공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봅니다.

　주위의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국내 전자정보통신기술 인프라와 기술개발에 매진하겠습니다』라는 정 원장은 ETRI의 노력을 인정해준 산업계에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히면서도 한국전자산업의 새로운 40년사에서의 ETRI 역할에 대해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약력

△1943년 광주 출생 △64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69년 사우스다코타주립대학원 전자공학 석사 △76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원 위성통신학 박사

●경력

△69~72 미국 컨트롤데이터연구소 연구원 △76~82 미국 NASA 연구원 △83~98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 데이터통신연구실장, ISDN 연구부장, 컴퓨터개발단장, 위성통신개발연구단장, 체신부 장관표창 △94~98 아.태위성통신회의(APSCC) 초대.2대 회장 △96 국방부 정보체계분야 정책전문위원, 한국과학기술자 총연합회 정책전문위원 △98. 4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