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즈키를 통해 일본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현재 일본 여자는 과거 상냥함이라든지 순종적인 미덕이 많이 사라지고, 서구화 되어 갔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전통이 지닌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스즈키는 웃을 때 앞니가 뻐드렁니로 튀어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여자였다. 다이묘 공장장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받았다. 돈은 한국에 있는 나의 은행통장에 입금되었다. 일은 끝났지만, 다이묘 회사에서 나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어서 홋카이도의 삿포로로 온천여행을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의 여행을 안내해준 사람은 후쿠오카의 누이동생 스즈키였다.
내가 어느 정도 일본말을 하고, 무엇보다 일본의 컴퓨터 원서를 많이 읽은 덕분에 그녀와 대화가 통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녀와 나는 자주 자리를 같이하고 일본 컴퓨터계 소식과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의견을 나누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나와의 여행에 그녀가 동행하는 것을 허락한 오빠 후쿠오카의 배려였다. 어떤 의미에서 아이들이 아니고 성인이기 때문에 동생의 의사에 맡긴 것이겠지만, 부모나 마찬가지인 오빠가 허락한 점이 파격적이었다.
스즈키와 나는 도쿄에서 일본 국내 항공기를 타고 삿포로 공항에 내렸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동북쪽으로 가서, 그날 저녁 무렵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후라노 역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열차로 바꿔 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산 중턱을 넘어서자 눈이 보였다. 스즈키와 내가 도착한 다이세쓰 산은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곳이었는데, 늦가을이면 눈이 쌓인다고 한다. 우리는 미리 예약되어 있는 온천장에 여장을 풀었다. 그 여관은 전통적인 일본식 집이었는데,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고, 가운데 난로가 있었다. 보일러 장치를 할 수 없어 난로를 설치한 것이 아니고, 일본 전통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우리는 두 개의 방을 나란히 구해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식사는 그 마을에 있는 전통 횟집으로 갔다. 마을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볐지만, 모든 가옥을 전통식으로 만들어 놓아서 일본의 전통적인 시골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의상으로 관광객과 마을 사람을 단번에 구별할 정도였다. 극히 드물게, 일본인 관광객 가운데 더러는 그곳에 와서 일본 전통 의상을 입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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