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기기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주생산품목이 노동집약형 의료용구에서 지식기반형 전자의료기기로, 산업구조는 내수중심형에서 수출중심형으로, R&D 방식은 개별기업의 독자개발에서 산·학·연·관 협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또 산·학·연·관 협력도 과거 대학 및 연구소에서 기업 중심으로 바뀌고 핵심 R&D 역량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속히 대체되고 있다.
업계구성도 대기업과 영세기업이 혼재하던 양상에서 탈피, 벤처기업 중심으로 확연히 바뀌는 추세다. 특히 전자의료기기 전문벤처기업의 대거 등장은 의료기기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가격경쟁시대가 종식되고 품질과 성능이 경쟁력의 척도가 된 것이다.
이를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전자의료기기산업이 토대구축 단계를 지나 본격 성장단계에 접어든 증거로 보고 있다. 과거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이 걸어왔던 발전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적 산업특성이 가미돼 미국과 유럽이 200년, 일본이 100년만에 이뤄낸 성과를 불과 20∼30년만에 이뤄낼 수 있었다고 외국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실제 생산품목중 세계 최초 개발품이거나 다섯손가락 이내에 꼽히는 제품이 다수 있고, 일부 품목에서는 선진 각국과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고 있다. 전산화 단층촬영장치(CT),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 초음파 영상진단기, X선 촬영장치, 체외 충격파 쇄석기(ESWL), 의료영상 저장전송시스템(PACS) 등 첨단 전자의료기기를 모두 생산, 우리 기술로 만들지 못하는 품목이 드물게 됐다. 시장규모나 생산규모도 아시아 2위권이자 세계 10위권에 접어든 지 이미 오래 됐다. 이같은 외형으로 인해 한국 의료기기산업은 외국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걸출한 기업이나 개인의 힘도 적지 않았으나 의학·반도체·전자·기계·통신·컴퓨터 등 전자의료기기산업의 인프라가 되는 연관산업이 비교적 탄탄하고 발전속도 또한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G7 프로젝트로 대변되듯 업계와 학계·정부가 혼연일체가 돼 산업육성의 기치를 높이 걸었고 꾸준한 R&D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특히 97년부터 산업계는 물론 범국가적인 열풍을 몰고온 벤처기업 신드롬 덕에 타 산업계가 흡수했던 유능한 인재들이 앞다퉈 이 분야에 투신하게 된 것은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체질 개선 및 경쟁력 강화의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교적 탄탄대로를 걸어온 국내 의료기기산업이 한 단계 도약, 명실상부하게 세계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점들이 보완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학계·산업계가 인식을 공유하는 선에서 전자의료기기산업 육성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마스터플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연구개발 자금이 지원되다 보니 투입에 비해 산출이 적은 결과를 낳게 되고,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전업계의 R&D 투자금액이 미국의 GE나 독일의 지멘스 등과 같은 단일기업의 투자재원이나 연구인력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자원을 모든 의료기기분야에 분산시켜서는 도저히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산업분야 내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우선순위를 결정, 단계별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이는 정부·학계·산업계의 전폭적인 공감 아래 마련된 마스터플랜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내 전자의료기기산업이 도약하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서 열리는 국내 유일의 국제 의료기기전시회(KIMES99)는 그 해답을 미리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이해되고 있다. 25일부터 28일까지 4일간 코엑스(COEX)
3층 대서양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메디슨·동아엑스선기계·비트컴퓨터·히타치 등 총 23개국 403개사가 참가해 초음파 영상진단기, MRI, C-ARM, 의료정보시스템, X선 촬영장치 등 각종 첨단 의료기기를 전시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역대 전시회 중 제조업체 및 벤처기업의 참가율이 가장 높아 그동안 외국업체의 명성에 가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의 역할을 해야 했던 지난날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는 또 의료전자 테크노파크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11개 의료기기업체로 구성된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와 연세대가 공동관을 구성해 출품하고 닥터리가 10여개 업체를 모아 함께 출품하는 등 과거보다 전략적 제휴가 활발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와 함께 메디슨은 전 계열사들의 생산품을 모아 산부인과·내과·외과·수술실 등 종합병원을 연상케 하는 과별 전시방식을 처음으로 채택, 성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으며 덴마크 업체들이 처음으로 공동관을 구성해 한국시장 공략의 출사표를 던져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IMF 관리체제 하에서 직격탄을 맞았거나 구조조정 여파로 사업이 크게 위축된 삼성GE의료기기·일동메디텍·대웅메디칼·지멘스제너럴메디칼·서통 등 중견업체들이 대거 불참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전시회를 주관하는 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측은 『참여업체 전시품목을 살펴보면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R&D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국내 수요가 활성화되고 수출이 증대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 기간 동안 서울시 방사선사 학술대회 및 의료분야 Y2K, PACS, MRI, 의료정보시스템 등에 관한 13건의 학술 및 기술세미나가 동시에 개최될 예정이다.
<박효상기자 hspark@etnews.co.kr>
전자 많이 본 뉴스
-
1
'게임체인저가 온다'…삼성전기 유리기판 시생산 임박
-
2
LS-엘앤에프 JV, 새만금 전구체 공장 본격 구축…5월 시운전 돌입
-
3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4
LG전자, 연내 100인치 QNED TV 선보인다
-
5
필에너지 “원통형 배터리 업체에 46파이 와인더 공급”
-
6
램리서치, 반도체 유리기판 시장 참전…“HBM서 축적한 식각·도금 기술로 차별화”
-
7
소부장 '2세 경영'시대…韓 첨단산업 변곡점 진입
-
8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9
비에이치, 매출 신기록 행진 이어간다
-
10
정기선·빌 게이츠 손 잡았다…HD현대, 테라파워와 SMR 협력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