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점차 사이보그로 변해간다.」
영국 BT사 연구소에서는 이같은 가정 아래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중이다. 「와이어드맨(Wiredman)」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몸 속에 인공장기를 담고 첨단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온몸을 친친 감고 다니는 미래형 인간의 한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와이어드맨」은 21세기 어느날 인조 눈과 귀, 양철로 된 다리와 팔, 아말감으로 만들어진 피부를 가지고 심장·간·췌장·폐·비장·위 같은 인공장기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게 될 지구촌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 프로젝트의 지휘자이며 권위 있는 미래학자인 BT연구소장 피터 카크레인 박사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 후에는 신체기능이 완전히 멈추기 직전의 환자들이 「와이어드맨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첨단기술의 힘을 빌어 인간의 몸을 재구성해보려는 일종의 인체설계도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와이어드맨은 몸 안과 밖에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심어놓는다는 게 특징이다. 우선 심장박동이 멈추지 않도록 전기자극을 주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를 비롯, 척추와 무릎의 통증을 완화할 수 있도록 고안된 「고통경감모듈(pain relief module)」, 뇌의 우엽과 좌엽을 동시에 진동시키는 「간질예방장치」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몸 속은 새로운 장기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도 이미 폐와 간, 신장, 심장 같은 장기를 포함해 무릎과 엉덩이, 발목관절, 팔꿈치 등 신체의 약 20%를 인공장치로 대체할 수 있다. 지난해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의 로버트 화이트 박사팀은 한 원숭이의 머리 아랫 부분 즉 몸을 통채로 다른 원숭이의 머리에 이어 붙이는 놀라운 실험에 성공해 세계가 경악한 바 있다. 실험결과 태어난 프랑켄슈타인 원숭이는 목뼈와 혈관만 연결했을 뿐 척수신경을 다 잇지 못해 결국 죽고 말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눈을 움직이고 소리를 듣고 음식의 맛까지 느꼈다. 화이트 박사는 척수 연구가 진전된다면 전신이 마비된 사람의 머리에 뇌사자의 몸 전체를 떼내어 이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BT의 연구는 생명윤리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장기이식보다는 다양한 전자장치와 이를 작동시키는 컴퓨터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뇌사자에게서 기증받지 않아도 되는 인조뼈와 인조피부, 시력이 없이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공망막, 전신마비에 걸린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실리콘 뇌 같은 전자장치가 주요 연구대상이다.
이 다양한 장치들은 정기적으로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 이 때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 와이어드맨의 병력과 현재 상태가 완벽하게 체크되는 메모리 뱅크를 이용한 원격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밀진단 결과에 따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기도 하고 아예 알고리듬을 교체할 수도 있다. 이같은 원격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무선전화 또는 몸 속에 부착된 소형 라디오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게 BT측의 설명. 또한 와이어드맨은 여권, 운전면허증, 은행카드 등 각종 플라스틱 카드와 신분증을 하나로 합친 지능형 반지도 하나씩 끼고 다니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와이어드맨을 움직이는 전원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다. 단순히 배터리를 몸 속에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임으로써 자동으로 에너지가 축적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피터 카크레인 박사는 「시간 여행자들을 위한 팁(Tips For Time Travellers:오리온 비즈니스 북 1977)」이라는 저서에서 『인체해부 반대론자나 기술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막상 죽음 앞에 직면한다면 실리콘 인간이 되는 것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 또는 사이보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기꺼이 와이어드맨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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