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욕망을 해소하면서 즐기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의 남편을 사랑하는 일과 무관하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한 짓거리라고 하더라도 남편에 대한 모독이고 사랑을 배신하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불장난으로 생각하면서 시작하겠지만 남녀의 육체적인 결합이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으며 그녀 역시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점이 두렵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뒤로 쏟아지는 그녀의 끈적끈적한 시선을 느꼈지만 나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녀가 울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외로움 때문에 말이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그녀를 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간통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서 나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죽는다는 성경구절이나 신화의 말처럼 나는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나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후에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많은 인생은 안 살았지만 내 삶에서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나는 회사에서 퇴근해 보따리를 쌌다. 그 집에 더이상 머물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홍 박사는 왜 나가려고 하느냐고 묻지 않고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나가더라도 출퇴근하면서 용희를 계속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도 사양했다. 그 집에 출입을 한다면 입주하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 차이에 불과했다.
여자가 기다리라고 하면서 봉투에 수표를 넣어 가져왔다. 그것을 열어보니 거액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해 그것을 받을 수 없었다. 그 봉투를 돌려주지 않으면 나는 평생 비열감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를 안았다. 그때 그녀의 품은 어떤 욕정이 개입하지 않은 진정한 우정의 포옹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당신은 성공할거야.』
떠나는 나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내 나이에 패기와 자존심과 도덕성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어떤 형태로든 나이도 들기 전에 부패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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