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빅딜" 전격 수용

 LG그룹이 LG반도체의 지분을 1백% 현대전자에 넘기겠다고 전격 발표함으로써 난항을 거듭해온 반도체 빅딜문제가 일단락된 것 같다.

 반도체 빅딜을 놓고 그동안 완강하게 반대하던 LG그룹이 이처럼 전격 수용키로 한 것은 구본무 그룹회장이 밝힌 것처럼 『이 문제가 전체 사업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돼서는 안된다는 대승적 판단에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의 관계자가 『이번 결정은 국가경제에 보탬이 되자는 뜻에서 정부의 강압이 아닌 자발적인 것이며 따라서 추후 소송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현대전자도 즉각 LG의 용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앞으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혀 반도체 빅딜은 이제 성사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양도 발표는 해당 그룹은 물론 국가경제의 대외신인도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또다른 대기업간의 연쇄 빅딜을 성사시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앞으로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법인이 출범할 경우 일본 NEC나 미국 마이크론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삼성에 이어 세계 제2의 D램 반도체 회사가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 업체들이 세계 D램시장의 1, 2위를 차지할 경우 가격결정력과 영향력이 증대되고 수출에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중복투자 방지와 연구개발비나 판매관리비의 절감 등 통합법인의 출범으로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크다. 외자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기술적으로는 그동안 개별회사가 가지고 있던 초고속 반도체 분야나 대용량 반도체 분야의 기술을 골고루 갖추게 됨으로써 고도의 첨단산업인 반도체 기술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반도체 빅딜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방법상의 문제나 절차 등을 놓고 야기된 갈등과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LG가 일방적으로 지분 1백% 양도를 밝힌 것은 비록 LG 측에선 대승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단안을 내린 것이라고 하지만 LG가 정부의 뜻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권이 「작심」을 한 상태에서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나 LG로서도 상황악화를 대비해 「실리노선」으로 급선회했고 또 이는 보상빅딜과도 연계돼 있을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얘기가 나도는 것은 대승적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내린 단안이라는 LG 측의 주장을 1백% 믿을 수 없게 하는 대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반도체 통합의 전격 동의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사에 큰 획을 긋는 대역사임에 틀임없다. 하지만 반도체 통합이 완전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LG 측에선 반도체 사업을 넘겨주는 대가로 시가 1조3천억원에 이르는 주식가격과 영업권 및 무형의 자산에 대한 가치를 비롯하여 통합 후 5년간 62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는 시너지 효과의 일부에 대해서도 요구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구체적인 인수협상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또 두 회사의 상이한 사업전략, 마케팅 및 상품기술의 조화문제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천공장(현대)과 청주·구미(LG) 등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생산공정의 통합 또는 공장의 효율적인 운영문제 등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장비 및 재료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반도체 통합회사가 출범한다고 해도 반도체 분야의 기술 특성상 상당기간을 각자의 방식대로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적어도 이 기간에는 이 분야에 대한 신규투자나 장비발주가 거의 중단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발전 토대를 음으로 양으로 지지해온 장비 및 재료산업은 앞으로 반도체가 통합될 경우 시장규모의 축소와 선의의 경쟁제한 등으로 오히려 위축되거나 업체에 따라선 아예 도태되는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소지도 있다.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몸집이 커진 한국 업체에 대한 미·일 업체들의 견제가 더욱 심화할 소지가 있으며 반도체 빅딜이 자칫 미국과의 새로운 통상쟁점으로 비화할 우려도 없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반도체 통합이 국가경쟁력 강화와 대외신인도 제고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추진과정에서 노출된 양사간의 앙금을 하루 빨리 걷어내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인력승계문제의 원만한 타결을 비롯하여 경영의 투명성 확보, R&D 강화 등 현안해결에 최우선을 두는 한편 대외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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