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대에는 지식·정보·기술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가 중요한 재산이라고들 말하죠.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니겠습니까? 예컨대 기술을 먼저 개발해도 특허가 없으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죠. 벤처업체 사장들에게 지적재산권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합동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변리사 임재룡씨의 별명은 「벤처닥터」. 특허출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벤처업체를 위해 속 시원한 처방전을 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무료상담을 통해 엔지니어 출신의 젊은 벤처업체 사장들과 만난다.
대덕연구단지에 찾아가 상담창구를 여는가 하면 대학 창업스쿨부터 지방자치단체의 창업보육시설까지 특허강좌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무료강의도 해준다. 대학산업기술지원단(UNITEF) 특허부문 운영위원으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벤처닥터로 동분서주한 탓에 강남구 역삼동 뉴서울빌딩에 자리잡은 그의 특허법률사무소 사무실 직원들은 특허출원을 의뢰하러 오는 고객보다 오히려 무료상담을 신청하는 전자우편과 팩스·전화를 처리하기에 바쁘다. 대기업 특허출원을 전담하면 쉽고 편하게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물론 대기업이나 외국계 업체 특허를 전담하면 부가가치야 높죠. 하지만 벤처업체를 도와주는 게 훨씬 보람이 큽니다. 무료상담을 해줘도 당장 특허출원을 의뢰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신생업체들이라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돼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대가를 전혀 바라지 않는다는 얘긴 아닙니다. 지금 도움을 받은 벤처업체들이 언젠가는 제 고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보람도 찾고 장기적인 투자도 하는 셈이죠.』
사실 임재룡씨가 벤처닥터로 나선 것은 지난 몇년간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일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93년 변리사 자격증을 딴 후 그는 D사를 비롯,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장기계약을 맺고 특허출원을 대행해 왔다. 자동차·전자·반도체업체들의 경우 연간 1만건도 넘는 특허를 내야 하기 때문에 숨돌릴 틈 없이 바빴다. 그런데도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기업은 특허권을 재산가치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의 특허소송에 대비하는 일종의 방어무기인 셈이죠. 경쟁사가 특허침해 소송을 걸면 맞받아칠 수 있는 크로스 라이선싱 전략이 필요하거든요. 자연히 물량위주로 흐를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기술수준은 벤처보다 오히려 떨어집니다. 대기업 중엔 양질의 특허 서비스를 바라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변리사사무실을 특허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하청업체로 취급하는 곳도 있죠.』
올 한 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무료상담실을 운영하는 동안 그는 국내 벤처업체들이 특허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국내출원도 문제가 많지만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해외특허 출원은 경비문제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특히 소프트웨어 벤처업체들이 특허출원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는 것을 볼 때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특허는 해외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외국 특허청을 통해 기술을 양도하거나 전용실시권·통상실시권 등 기술 라이선싱으로 로열티를 거둬들일 수도 있죠. 무조건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를 부담하기보다는 해외 특허출원을 고려해 봐야 합니다. 의외로 종자돈을 마련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충남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들러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까지 빠듯한 벤처상담 일정 때문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서며 임재룡씨는 다시 한번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스타링크 이어 원웹, 韓 온다…위성통신 시대 눈앞
-
2
美 마이크론 HBM3E 16단 양산 준비…차세대 HBM '韓 위협'
-
3
애플페이, 국내 교통카드 연동 '좌초'…수수료 협상이 관건
-
4
단독CS, 서울지점 결국 '해산'...한국서 발 뺀다
-
5
카카오헬스, 매출 120억·15만 다운로드 돌파…日 진출로 '퀀텀 점프'
-
6
LG 임직원만 쓰는 '챗엑사원' 써보니…결과 보여준 배경·이유까지 '술술'
-
7
美매체 “빅테크 기업, 엔비디아 블랙웰 결함에 주문 연기”
-
8
NHN클라우드, 클라우드 자격증 내놨다···시장 주도권 경쟁 가열
-
9
BYD, 전기차 4종 판매 확정…아토3 3190만원·씰 4290만원·돌핀 2600만원·시라이언7 4490만원
-
10
[CES 2025] 삼성SDI, 첨단 각형 배터리·전고체 배터리 공개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