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가정교사를 하면 책 살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빼앗기겠지만 그것마저 투자하지 않고 돈을 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자리에서 승낙했다. 다만 가르치는 시간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로 국한시켰다. 평일에는 늦게 남아서 컴퓨터 실습을 하거나 전문대학 야간부에 나가 수업을 받아야 했다. 깊은 밤에는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뿐이었다.
『좋아요.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오후로 하는 것이 어때요?』
『토요일 저녁이어야 합니까.』
『애가 토요일도 학교에서 늦게 끝나요.』
『몇 학년입니까?』
『여고 2학년에 다니는 딸이에요.』
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쳐다보았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빨리 결혼을 해도 고등학교 2학년의 딸을 두기는 무리한 일이었다. 속도 위반을 한 것일까. 배용정의 말처럼 남자가 먼저 따먹고 책임지기 위해 빨리 결혼한 것일까.
여자가 나간 후에 나는 한성우에게 그녀의 나이를 물어 보았다. 짐작했던 대로 그녀는 서른 네 살이었다.
『서른 네 살이면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둘 수 있나요?』
『계산이 안나옵니까?』
한성우가 웃으면서 반문했다. 그는 내막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저는 수학을 잘 못합니다만, 삼십사 빼기 십팔이면 열여섯인데 열여섯 살에 결혼을 했단 말입니까?』
『홍 박사는 후처로 들어갔어요. 그녀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만났다고 해요. 남편은 섬유회사를 가지고 있지요. 큰 공장을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남자가 사업차 미국에 나갔다가 홍 박사를 만났나 봐요.』
『그럼 지금 말하는 고등학교 2학년 딸은 전처의 소생?』
『그렇지요.』
『전처와는 사별했나요?』
『듣기로는 그냥 이혼했다고 하오. 홍 박사 남편이 홍 박사를 만나면서 전처와 이혼한 것이지요.』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는 영어 가정교사로서 보수만 제대로 받으면 되었다. 아직 보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상식적인 선에서 합의를 본다면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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