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2000년(Y2k)문제를 둘러싸고 전세계적으로 소송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컴퓨터의 연도인식 오류인 Y2k문제와 관련된 소송대란을 2000년 1월 1일 이후의 문제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은 이미 적지 않은 송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많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선 사실상 이미 소송대란의 막이 올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Y2k 소송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Y2k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 현실적인 손해발생과 관련한 것과, Y2k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첫번째 경우는 일반적으로 오는 2000년 이후 소송의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두번째 경우는 당장 Y2k 해결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것으로, 미국 등지에서 이미 상당수의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의료장비업체인 메디컬매니저가 이 회사의 의료관리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의사들로부터 집단소송을 제기당해 그 판결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소송에서 원고측은 『메디컬매니저가 2000년부터는 사용할 수 없는 제품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구매자들에게 고지하지 않고 제품을 판매했다』며 Y2k문제를 무료로 해결해줄 것과 함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법률전문가들은 2000년 이후 컴퓨터 오작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은 예상돼 온 것이지만 이번 소송은 소프트웨어 수정비용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키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요구하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Y2k 집단소송은 사실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에선 지난해 12월 소프트웨어비즈니스테크놀로지스(SBT)라는 소프트웨어업체를 상대로, 97년 3월 1일 이전에 이 회사의 회계소프트웨어를 구매했던 고객들이 아틀라스인터내셔널이란 회사를 대표로 하여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원고측은 SBT가 97년 3월 Y2k문제를 해결한 제품을 내놓은 후, 이전에 판매한 제품에 대해 무상서비스를 해주지 않고, 오히려 과도한 해결비용을 요구하자 이는 제품보증 계약위반과 사기 및 불공정거래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SBT에 5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SBT는 이에 대해 Y2k문제는 보증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맞섰다. 당시엔 큰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이 소송사건은 그러나 최근 들어 Y2k문제가 세계적인 주요 관심사로 급부상하면서 메디컬매니저 건과 맞물려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Y2k 집단소송이 주로 다수의 구매자를 상대로 판매된 제품의 제조 혹은 판매업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면 개별소송은 시스템통합(SI) 계약 등을 통해 기업고객의 개별요구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를 상대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현재까지 제기된 소송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다.
최근 미국 법원의 첫 Y2k 중재결정으로 관심을 모았던 인코얼로이스인터내셔널과 SI업체인 ASE 사이의 소송도 그 중의 하나다.
니켈합금 제조업체인 인코는 지난 95년에 5년 기한의 SI계약을 ASE와 체결했으나 이 회사가 『Y2k문제는 자신들의 책임사항이 아니다』며 이 문제에 대한 무상해결을 거부하자 다른 업체에 문제해결을 맡긴 후 ASE에 소요비용 3백9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려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연방지방법원은 그러나 이에 대해 Y2k문제 해결에 관한 특별한 약정이 없었다면 SI업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며 ASE는 인코가 요구한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중재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Y2k관련 소송에 대한 미국 법원의 입장을 최초로 나타낸 것으로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코와 ASE간의 분쟁에 대한 법원의 중재결정은 따라서 이전까지와 달리 제품이나 서비스 공급자측이 소송에서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후 뉴욕 법원도 재무소프트웨어인 「퀴큰」 제조업체인 인튜이트를 상대로 제기된 3건의 Y2k관련 손해배상 소송을 모두 기각, 공급업체의 손을 들어 준 또다른 판례를 남겼다.
인튜이트에 대한 판결에서 법원은 지금까지 자사 소프트웨어 사용자가 Y2k문제로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으며 내년말까지 문제가 있는 기존 제품 사용자에겐 무료로 수정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의 미국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Y2k 소송에서 제조업체나 서비스 제공업체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소송 사안에 따라선 제품 구매자나 서비스를 제공받은 업체가 승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2000년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면 제품 개발업체들이 이 문제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공급업체들은 Y2k를 지금처럼 「특수」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대고객 「서비스」라는 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오세관 기자 sko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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