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본격화한 교육정보화사업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불안한 출발을 했다. 정부는 예산삭감과 사업연기를 잇따라 했고 사업시행에서 무엇이 우선 순위에 해당하는지조차 몰라 허둥댔다. 정부는 정부대로 표면적인 문제없는 사업시행을 위해 일을 추진했다. 또 학교는 학교대로 정부의 지침에 따라 자율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관련업계 또한 교실망사업을 굶주린 상태에서 「좋은 먹이감」 정도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교실망사업은 더욱 혼탁한 양상을 보였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전문성으로 인해 교실망사업은 교육청과 업계 일부관계자들만 아는 별종사업(?)으로 취급받아 왔다. 실제로 일선 학교에선 PC와 PC를 케이블로 연결만 하면 네트워크 구축이 끝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가 학생들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줄 것인지는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수없이 나온 얘기이지만 정보화를 추진하는 데 네트워크는 기반 중의 기반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정보화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추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 전문가는 드문 실정이다. 각 학교마다 전산담당자가 전문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PC·소프트웨어·서버·네트워크 등 소단위의 교육정보화를 한 손에 쥐고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번 경기도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의 각급학교 네트워크 입찰제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불거져 나온 것도 이러한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각급학교의 요구를 일괄 수거해 입찰에 들어가는 네트워크 입찰제안서(시방서)에서 특정회사의 고유사양이 명시되는가 하면 심지어 고유모델명까지 명기함으로써 입찰이라기보다는 담합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대해 담당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제안요청은 각급 학교에서 정하기로 되어 있어 요청된 제안에 대해서는 교육청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각급학교 전산담당자의 소관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각급학교 전산담당 교사는 어떠한가. 초등학교 전산담당 모교사는 『네트워크제품 중 어떤 제품이 어느 정도의 성능과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사실상 알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여러번 들었던 낯익은 브랜드의 제품을 예산에 맞게 적절히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트워크에 대해 지식이 없다고 일선 교사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관련교육의 창구가 없는 교사들로서도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각 시도교육청의 교원정보화 연수과정을 봐도 네트워크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PC나 인터넷 활용, 문서작성 등이 대부분이며 고작해야 멀티미디어 콘텐츠 개발교육 정도이다. 네트워크는 별로 신경 안써도 되는 분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주에 목을 맨 업체들로서도 일선학교 담당자만 포섭(?)하면 된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어느 사업보다 로비력이 잘 먹히는 분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수주는 해야겠고 가격은 한정돼 있다 보니 저가경쟁은 당연한 귀결이다. 결국 저가경쟁은 부실을 초래한다.
일부 업체가 교실망에 제안한 네트워크장비 중에는 이미 생산이 중단된 재고품이 있는가 하면 국산으로 둔갑된 저가 대만산 제품도 있다. 가격만 맞추면 된다는 이기적 발상에서 나온 업체들의 상혼이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네트워크업계의 한 관계자는 『입찰 제안된 교실망장비의 사양을 보면 한 업체에 지나치게 편중되는 경향을 보이는가 하면 이미 사장되어가는 기술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며 『교실망 입찰제안을 꼼꼼히 살펴보면 정작 중요한 핵심기능은 이미 한물간 수준이면서 별 필요없는 기능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상황을 미뤄볼 때 교실망에서 네트워크 전문가의 부재와 함께 로비력의 창궐을 실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실망은 한번 구축해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분야다. 토대를 잘 다져야 벽돌을 쌓기 쉬운 건축물과도 같다. 그러나 교실망에는 전문가도 없고 전문교육도 없다. 장래를 생각하기보다 일단 팔고 보자는 업체들의 상혼이 난무하고 있다. 민관이 참여하는 사업에 잡음이 없을 수 없겠지만 교실망의 우선순위와 차순위를 교육관계자 스스로 인식해 정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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