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은 국가부도위기 속에서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결정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 경제체제가 IMF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경제는 물론 정치·사회·문화 할 것 없이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동안 이동통신서비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초고속정보통신기반 구축 등에 힘입어 일취월장하던 국내 전자·정보통신산업 또한 생존을 위한 많은 변화를 경험해야 했으며, 지금도 커다란 변화를 강요하는 대내외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난날을 각성의 기회로 삼고 다시 뛰어야만 한다. IMF 1주년을 맞아 전자·정보통신산업의 변화상을 짚어보고 앞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한·일 합방 이후 최대의 국치」 「6·25 이후 최대의 국난」 등으로 일컬어지는 IMF사태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경제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40년간 고속성장의 신화를 창조하며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단 1년만에 살아남기 위해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회사를 매각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 95년 1만37달러, 96년 1만5백43달러로 올라서면서 2년간 1만달러 시대를 구가했던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와 함께 당장 1만달러 시대를 마감해야 했다. 지난해 9천5백11달러로 하락한 1인당 국민소득은 마이너스 6%대의 감속성장이 예상되는 올해는 6천6백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추산되며 내년에는 다시 5천달러대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섰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던 한국 경제가 10년 뒤로 뒷걸음치고 만 것이다.
구조조정의 파고를 이겨내고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감봉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특히 저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 경제성장 가도를 달려오면서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던 명목소득이 올 들어 처음 감소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겹친 국민은 소득이 감소한 것보다 소비를 더 줄임에 따라 내수기반이 붕괴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IMF체제에 들어서면서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년이 되도록 구조조정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은 인원과 조직감축, 합병절차 등이 아직 진행중이며 이에 따라 경제회복의 관건인 신용경색 해소가 정부 당국의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의 핵심 분야라고 할 수 있는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은 아직 본격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강도를 놓고 정부와 재계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있다. 공공부문 특히 정부부문의 구조조정도 아직 획기적인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공조직은 정치논리에 막혀 통폐합에 실패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외자유치의 경우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10월 말까지 외국인 투자액(신고기준)은 55억3천1백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5.3% 감소했다. 이는 올해 유치목표인 1백억달러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물론 외국인 투자유치가 저조한 데는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은데다 외국 기업에 대한 배타적인 국민정서, 국내 기업 자산에 대한 평가차지, 고용구조의 유연성 부족 등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공장가동률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까지는 80% 수준을 유지했으나 IMF이후 급락하기 시작, 올 초에는 60%대로 떨어졌고 지난 9월에야 70%대로 겨우 회복됐을 정도다. 그나마 가동중인 제조업체 중 유휴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가 작년의 3배로 늘어났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신규투자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며 산업현장의 신음소리는 높아만 가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의 돌파구로 여겨지는 수출마저 급격한 원화 절하에도 불구하고 크게 늘어나지 못하고 지난 5월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지금까지도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올 들어 9월 말까지 수출은 반도체 수출부진 등으로 인해 9백80억달러에 그쳐 지난해 동기에 비해 1.7% 감소한 실적을 보였다. 이같은 수출부진은 주력시장인 동남아와 중국·일본 등의 경제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출단가 하락과 금융경색, 구조조정 지연, 산업기반 유실 등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지표상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일부 민간 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최근 들어 조속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미 경기저점을 통과, 내년 상반기나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기대된다는 성급한 전망이 대두되면서 경기저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관 경제연구기관들은 우리 경제의 IMF 극복을 3∼4년 이후로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외환위기가 아시아와 러시아에 이어 중남미 국가들로 확산돼 가면서 세계 경제는 상당기간 불안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자·정보통신산업 경기는 내수보다는 수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만큼 수출경기가 얼마만큼 회복되느냐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전자·정보통신부문의 내년도 수출전망을 보면 정보통신부문의 경우 주변기기의 가격하락이 진정되기는 하지만 무선통신의 대폭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곤란하고 수출단가가 계속 떨어져 올해보다 2.5% 감소한 80억달러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도체는 올 상반기부터 시작된 업계의 감산으로 가격이 소폭 오르고 엔화강세로 가격경쟁력이 회복돼 내년에는 올해보다 수출이 3.8% 정도 늘어난 1백77억여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가전은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후퇴 조짐이 보이는데다 아시아 및 신흥 수출전략 시장의 경제불안 등으로 대외여건이 나빠지면서 수출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처럼 전자·정보통신산업의 경기회복은 특별한 진작요인이 돌출되지 않는 한 산업전반의 경기순환 사이클과 맞물려 당분간 어려움이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정보통신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국제간 전자상거래부문에 대한 정부의 역할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구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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