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PC사업이 너무 조용하다. 요즘 삼성전자의 PC사업을 들여다보면 지난 10년 동안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면서 국내 PC 시장을 주도해왔던 기업답지 않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PC사업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삼보컴퓨터·대우통신 등 시장점유 순위에서 삼성전자와 큰 격차를 보여왔던 주요 PC 제조업체들은 올들어 IMF라는 시장상황에 맞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고 국내시장 기반 확대는 물론 해외시장 공략에 대대적으로 나서 세계적인 PC 제조업체들의 경계를 살 만큼 주목받고 있는 데 반해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의외로 조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그동안 경쟁업체에 비해 가장 앞서 신제품을 출시하던 방식에서 점차 탈피해 최근 들어서는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된 상황에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출시 시기도 기존 평균 2개월 단위에서 분기 단위로 크게 늦췄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데스크톱PC 분야에서 올초 「M6000」 등 일부 펜티엄Ⅱ PC기종과 지난 10월 셀러론 6개 기종을 발표한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또 기존 고가·고기능 위주의 제품 전략을 크게 수정해 최근 저가형 제품 판매에 영업력을 집중하면서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경쟁업체와의 차별화에 따른 시장주도권 확보 경쟁을 중단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아울러 본사 단위의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크게 줄이고 지역별 소단위 판촉행사를 실시하는 등 판촉행사 규모를 눈에 띄게 줄였다.
관련업계에서는 IMF 한파 이후 대부분의 PC 업체들이 「몸집 줄이기」와 「비용축소」를 단행하는 일반적인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같은 움직임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이같은 국내 PC 사업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IMF 한파 이후부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전국 최대의 유통망과 AS센터를 갖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매출액 대비 2.5% 수준의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붓는가 하면 고기능·고가형 위주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면서 국내시장 점유율 늘리기에 박차를 가해왔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지난해 총 66만대 가량의 PC를 국내시장에 공급해 34%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면서 29만대를 판매, 2위를 차지한 삼보컴퓨터를 2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고 확고한 1위를 고수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IMF 한파에 따른 수요격감,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변화 등 기존 시장상황이 크게 변하면서 삼성전자의 PC사업전략이 「정중동」자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약 20만대의 PC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30% 수준을 가까스로 유지한 반면 삼보컴퓨터·대우통신·LG IBM은 각각 12만대, 6만대, 6만대의 PC를 공급하는 등 기존 삼성전자가 확보하고 있는 영역을 크게 잠식했다.
삼성전자는 국내 PC시장에서 경쟁업체의 약진에 따라 상대적인 시장 주도력이 다소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95년 AST리서치사 인수 이후 해외 수출시장에서 큰 곤욕을 치르면서 해외시장 부문에서도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삼보컴퓨터는 최근 코리아데이타시스템즈(KDS)와 공동으로 미국에 e머신즈라는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5백달러 이하의 세계 초저가 PC 시장 공략에 나서 이미 20만대의 수출계약을 체결했으며, 대우통신도 올 상반기에 수출물량이 전년 동기대비 30% 이상 늘어난 5천8백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높이고 있다.
일부 PC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삼성전자가 올해 들어 시장에서 입지가 축소되고 있으나 이는 삼성전자의 도약을 위한 기반 다지기의 일환』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최근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마케팅 전략을 크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사업 추진에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그룹 본사에서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해 확보한 대규모 자금이 최근 인수포기와 함께 삼성전자의 컴퓨터사업 분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쟁업체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 PC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시장공략에 나설 경우 국내 PC 시장은 새로운 판도가 짜여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향후 PC사업 방향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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