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배경
현재 세계 사운드카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싱가포르 크리에이티브사는 지난 90년경만 해도 우리나라의 가산전자나 두인전자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 게 없던 회사였다.
하지만 약 8년이 지난 지금, 가산전자와 두인전자는 부도가 나 중도하차 위기에 몰렸고 크리에이티브사는 세계시장에서 내로라 하는 사운드카드 업체들의 벽을 잇따라 뛰어넘으면서 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에이티브사의 성공전략은 무엇보다도 해외기반 교두보를 빨리 구축했다는 점과 국가적인 벤처지원 정책을 십분 활용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이미 90년대 초부터 싱가포르에서 생산기지와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 인력을 파견, 앞서가는 각종 정보를 빠르게 입수함으로써 세계 IT시장 변화추세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특히 이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랩」이라는 회사이름을 사용, 마치 미국회사인 것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심고 미국의 벤처자금을 다량 확보해 자금운용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점도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비해 가산전자와 두인전자는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 지난해에 들어서야 미국과 유럽지역에 지사를 설립하는 등 수출정책을 펼쳤으며 이조차도 IMF 한파로 인해 시작단계에서부터 벽에 부딪쳤다.
특히 미국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사나 싱가포르 크리에이티브와 같은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전문업체들이 이미 90년대 초반 사업의 기반을 세계시장으로 옮긴 데 비해 우리나라의 가산전자와 두인전자는 내수시장에 집착함으로써 기술을 선도하기 어려운 지역적인 한계에 봉착했고 브랜드 지명도마저 낮아 시장을 선도하기보다는 선두권업체들을 쫓아가는 형태를 취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한계를 보여왔다.
또 두 회사가 지금까지 투자했던 MPEG2 기반기술이 결실을 맺고 있는 시기가 됐지만 정작 두 회사는 그토록 공들였던 기술마저 잃게 되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과 금융관행도 멀티미디어 주변기기산업을 벼랑끝으로 몰고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사는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애드리브·터틀비치·미디어비전 등의 경쟁업체들을 누르고 현재는 세계적인 사운드카드 업체로 발돋움했다. 5%대의 금리혜택에 사무실, 공장 장기 임대 등 IT분야에 대한 국가적인 벤처 지원정책 아래 홀가분한 상태에서 기술개발에만 힘을 쏟은 결과다.
미국 야후사와 같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기업에 투자가 잇따르는 것도 IT산업에 대한 미래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폭넓게 퍼져 있어 가능하다.
그러나 가산전자와 두인전자는 국내에서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기술력과 장래성 등 미래가치보다는 담보능력과 생산성 등 재무제표상 수치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관행으로 인해 IMF이후 더욱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경험과 브랜드 인지도, 영업판매망, 기술력 등 기업의 무형 자산을 금융기관에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채 부동산 담보만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담보할 만한 여력이 크게 부족, 자금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즉 지난해말 IMF사태가 벌어지면서 떨어질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한 대출금리와 부동산 가격급락, 외환거래 마비사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벤처 육성정책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 두 회사는 환율상승으로 외환거래가 힘들어진 상태에서 상환해야 할 수십억대의 부채에 대한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 제조와 회사운영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고 밝혔다.
결국 두인전자는 유럽지역에 위성TV 수신카드를 개발해주는 기술수출을, 가산전자는 미국지역에 3백억원대의 제품수출을 따놓은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인한 자금경색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게 됐다.
<이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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