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 끝에 선 멀티 주변기기 산업 (상)

시장 현황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산업의 중심축을 이뤄온 두인전자와 가산전자가 잇따라 좌초함으로써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미 하반기 들어 TV수신카드 개발업체인 새누리전자가 영업을 포기했으며 멀티미디어 제조업체들이 속속 수입오퍼상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그래픽·사운드카드 등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시장을 대만산에 통째로 내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시장은 모뎀과 통합보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대만제품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모뎀의 경우는 「형식승인」이라는 사실상의 방어막이 존재함으로써 저가 대만산 제품의 공세를 어느 정도 차단하고 있지만 나머지 제품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요즘 들어서는 대만 주변기기 제조사들이 CD롬 드라이브 분야에까지 진출해 국내외 시장에서 저가공세를 펼침에 따라 국내 CD롬 드라이브 제조사를 괴롭히고 있다.

 국내 그래픽카드 시장의 경우 초저가 제품과 고급형 제품으로 뚜렷하게 양극화돼 있다. 고급형 제품군에서는 브랜드 지명도를 갖춘 크리에이티브와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가, 저가형 제품쪽에서는 대만산이 싼 가격을 무기로 국내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개당 3만∼5만원대의 그래픽·사운드카드 등 일부 제품군은 국내 제조사들의 제조원가보다 수입에 따른 제반비용을 모두 합친 수입가격이 더 낮아 국내 제조업체들이 이익없는 매출만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인텔의 그래픽 칩세트인 「i740」 제품. 당초 이 칩세트를 수입해 제품을 개발하고 있던 국내 그래픽카드 제조사들은 중고가형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개발을 추진했으나 개발기간에 끝모르게 추락하는 대만산 제품의 저가공세에 밀려 큰 손실을 입는 아픈 상처만 남겼다.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유통시장도 최근 1∼2년 사이에 커다란 변화를 보여왔다. 환율상승으로 한때 잠잠하던 주기판 수입이 크게 늘어 최근 국내 대기업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대만산 제품이 시장을 급격하게 잠식하고 있다.

 그래픽카드와 사운드카드 역시 외산 제품 비중이 커지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미국 3Dfx의 「부두2」칩세트나 엔비디아의 「리바 TNT」칩세트 등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제조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의 경우에는 외산제품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업체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대기업에 대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의 경우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OEM 전문제조사들은 금융비용과 일반화된 어음거래 관행으로 기회손실만 커질 뿐 큰 이익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두인전자와 가산전자가 잇따라 좌초함으로써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업계가 이 분야의 새롭고 획기적인 기술을 수용, 보급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된다. MPEG2 기술에 기반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뿐만 아니라 주문형반도체(ASIC)에 이르는 광범위한 요소기술에 일정 부문 자금력을 갖추고 있던 두 회사의 부도가 2강 체제로 형성됐던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기반기술의 성장세를 중도하차시키는 결과까지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원리를 무기로 세계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대만과 달리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제조사들은 대중성있는 저가형 제품만을 개발할 수밖에 없고 이나마도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내수시장에서 동급 수입제품에 밀리는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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